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증거’를 찾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자주 세상 가운데로 ‘던져졌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하나님!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까?”
믿음의 선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다니엘이 어려서부터 경험한 세상의 현실은 조국의 패망, 권력자의 몰상식, 우상 숭배, 사람들의 시기와 암투 등으로 인한 죽음의 위협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하나님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통치하심을 드러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다니엘서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통해, 또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지 배우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거룩함을 지키는 자(1장)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포위됐습니다(주전 605년). 다니엘서는 이를 “주께서 넘기셨다”고 설명합니다(1:1~2). 성전의 기물이 넘겨지고, 귀족 중 일부가 끌려가야 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 중에서 탁월한 몇 명의 소년들을 ‘왕궁에 서게’ 하셨고,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1:4)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깨집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왕을 “여호와께서 높이신다”는 뜻의 여호야김이 아니라 “나부 신이여 경계석(상속자)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느부갓네살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네 소년의 이름을 모두 바벨론의 우상들을 높이는 이름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껍데기만 남아버린 성전의 예배와 이름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왕을 결코 두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참된 믿음으로 살지 않을 때 차라리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손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키우시고, 통치권을 발휘하셨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가운데 던져졌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함을 지키겠다는 결단이었고, 그 결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으며, 또한 세상의 위협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1:7~10).
왕이 내려준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을 한 것은 아직 어렸던 다니엘과 세 친구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항거였고, 영적 전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으로 싸우는 자들과 함께하십니다. 그 지혜와 총명이 나라 전체의 어떤 박수나 술객보다 나았을 뿐 아니라, 자기를 뽑아 세운 그 왕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그 지역을 통치하게 됩니다(1:20~21). 이처럼 하나님은 우상으로 가득한 곳에서도 거룩함을 지키는 자들을 통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2장)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끌려온 것이 느부갓네살의 재위 첫 해였고(주전 605년), 재위 2년(2:1)에 이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왕의 음식을 거절하는 모험을 시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왕은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말해 주지 않고 그 내용을 설명하고 해석까지 하라고 지시합니다. 신이 아니고서는 보일 수 없는 요구를 하며(2:11),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모든 지혜자를 무차별적으로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다니엘이 취한 태도는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 줍니다. 침착하게 근위대장에게 말해 시간을 얻고, 동역자들과 함께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2:15~18).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다니엘에게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주님의 지혜가 임하고, 그 지혜는 하나님이 지금도 세계를 통치하고 계심을 깨닫게 합니다(2:29~30).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이 세상 역사는 신상(우상)의 역사이며 금과 은과 놋과 쇠의 역사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부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가득하리라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느부갓네살에게 보이시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도록 섭리하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하나님 없는 세상이요 다른 신들을 섬기는 세상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 임재하셔서 모든 세속의 역사 가운데 섭리하십니다. 엄밀히 말해,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에 의해 이뤄져 갑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자(3장)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느부갓네살에게 넘기셨다고는 하나, 유대인으로서 그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은 위험의 연속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이전과 같이 왕의 음식을 먹지 않는 수준의 ‘거룩’이 아닌 우상 숭배 강요와 죽음의 협박 앞에 서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금으로 높이 60규빗(약 25~ 30m)의 신상을 만들어 자신이 통치하는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신상 앞에 절하게 했습니다(3:5). 인간은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고 소유가 많아질수록 그것을 잃지 않으려 노심초사합니다. 느부갓네살의 이런 무리한 행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이룬 넓은 제국에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존재했고, 그들을 모두 자신과 자기 후손에게 복속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종교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것은 결국 이런 제국주의적 왕권에 대한 저항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풀무불의 위협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고백했고, 우상 숭배를 거부했습니다(3:17~18).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는 7배나 뜨겁게 된 풀무불 속으로 던져졌지만, 그 풀무불 속에서 함께하시는 주님을 체험했습니다(3:24~25). 결국 우상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려는 왕의 시도는 신앙을 위해 풀무불을 두려워하지 않은 세 사람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고, 온 세상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이 인정됐습니다(3:28~29).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4~5장)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으로 자신의 백성을 보내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온 땅을 통치하고 계심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바벨론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세상 안으로 ‘던져진’ 것만 같았던 다니엘과 세 친구가 그 안에서 ‘일사각오’의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1~3장) 후, 다니엘서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심을 적극적으로 선포합니다. 느부갓네살에게 다시 꿈으로 계시가 주어지고, 그 계시가 다니엘에 의해 해석됩니다. 그 해석은 결국 바벨론 제국의 참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라는 경고였습니다(4:26).
하나님의 계시는 정확히 그에게 임해, 그는 왕궁에서 쫓겨나 먹을 것이 없어 풀을 먹고, 잘 곳이 없어 이슬을 맞으며, 머리털과 손톱을 정리할 수조차 없는 비참한 상태에 떨어지게 됐습니다(4:33).
느부갓네살은 금 신상을 통해 자신의 통치권을 자신이 정복한 모든 땅에 미치게 하기 원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온 땅의 통치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벨론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께서 왕을 선택하셔서 세우시고, 그 뜻대로 통치하심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아들 벨사살 왕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같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5장). 벨사살이 교만해 큰 잔치를 열어 천 명의 귀인들을 초대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되던 금그릇, 은그릇으로 술을 마시며 우상들을 찬양했습니다(5:1~3). 분명 그 아버지 느부갓네살이 온 땅을 다스리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천명했고(4:34), 벨사살은 그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만한 벨사살과 그 귀인들 앞에 하나님께서 보이신 손가락이 벽에 쓴 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5:25)의 뜻은 ‘세어 보고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벨사살 왕을 평가해 보니 부족하더라는 것이며, 그가 적절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빼앗아 다른 이에게 주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결국 벨사살은 그날에 죽임을 당하고, 그 나라는 다리오에게 넘어갑니다(5:29~31). 당시로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대제국의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만 그 자리와 권세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거룩함을 지키며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두려움 없이 영적 전투를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땅의 참 통치자가 오직 한 분,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사람이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하는 사명을 부여받고, 세상 가운데 보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이 사명을 확인하는 한 달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