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성경을 깊이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빠지는 오류 중 하나는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창 12:3)을 계획하신 이후로
일관되게 자기 백성을 사랑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취소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7~8장)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해 죽고, 부활했다는 논증을 이어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율법에 대해 죽었기에 더 이상 율법에 대한 책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7:1~6). 이때, 율법을 죄와 동일시하거나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입니다.
다만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도구일 뿐,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7:7~12). 율법은 우리의 행실을 판단하는 역할만 할 뿐,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만으로는 ‘사망의 몸’(7:24)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7:13~25).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생명의 성령의 법’(8:2)에 의해 해방됐기에 육신을 입고 있지만 더 이상 사망의 몸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율법은 육신에 연결돼 있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즉 행위를 규정하지만, 영에 연결된 생명의 법은 “우리가 누구인가?” 즉 지위를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의 영의 법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은 상속자,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얻습니다(8:14).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바울은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과해 영광을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마땅히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이후에 우리에게 있을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됐듯이,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해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 회복될 것입니다(8:18~22). 그 회복에는 죄의 영향력에 오염된 우리의 육신도 포함돼 있습니다(8:23). 비록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해 구원을 얻는 날을 바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입니다(8:24~25).
비록 현재 세상의 고난을 경험하고 있고,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도우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회복의 소망을 품기에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8:24~39).
이스라엘은 버려졌는가?(9장)
그런데 이때 이런 문제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이전에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지 않으셨나? 만약 하나님이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하신다면,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폐기하셨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스라엘이 불순종했다는 이유로 언약을 폐기하시고 그리스도를 구원의 길로 삼으셨다면, 그리스도의 언약도 폐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음을 전제하며 설명을 시작합니다(9:1~5).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 안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 퍼져나가고 있지만 정작 이스라엘은 그 구원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원래 복음은 먼저 유대인에게 주어졌으며, 예수님도 유대인으로 오셨기에 유대인이 우선권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9:4~5).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육신적 혈통에 근거해 구원 여부를 결정하신 적이 없고, 오직 ‘언약’에 의해서만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 이삭에게는 에서가 있었지만 그들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9:7~13). 바울은 이스마엘과 에서가 약속의 자녀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고 되물으며, 토기장이에게 자기가 만든 그릇을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그 주권을 따라 행하시는 것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9:14~23).
바울은 이를 호세아와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남은 자’ 사상으로 설명합니다. 이 선지자들에 의하면 구원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아닌 자들, 즉 이방인을 부르시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의해 이 예언이 성취되자 의롭지 않았던 이방인이 믿음으로 의를 얻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졌던 이스라엘은 율법을 따르고 행위에 의지하다가 걸려 넘어집니다(9:24~33).
복음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구원(10장~11:1)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획득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율법은 언약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줄 뿐입니다.
바울은 신명기 30장 11~14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음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10:8; 신 30:14)고 하셨으니, 이는 믿음을 요청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10:10)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한 것은 복음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10:11~15).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유대인)은 복음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도 이스라엘이 듣지 않았지만 그 말씀은 땅끝까지 이르렀습니다(10:16~18).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불순종할 때마다 이방 민족을 들어 징계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이방인에 대한 경쟁심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부르시곤 했는데, 지금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지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셨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바울 자신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며 베냐민 지파로서 구원을 받지 않았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10:19~11:1).
자만할 수 없는 이방인(11:2~36)
하나님은 끝없이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 보내셔서 그들을 부르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탄식했듯이, 이스라엘 전체가 다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혼자만 남은 것같이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인을 남겨 두셨습니다(11:2~4).
분명 모든 유대인이 복음을 배척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교회에도 유대인으로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 칠천 인에 해당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 중에서 은혜를 입은 자들은 하나님께 남아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의 이방인들에 대한 훈계도 잊지 않았습니다(11:13~24). 바울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됐지만 이로 인해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졌듯이, 이방인이라고 해서 그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경고입니다(11:21).
바울은 설명을 마치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우둔하게 돼 그 자리를 이방인들이 다 채우면 그들이 한 이스라엘이 돼 구원을 받는 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순종하지 않을 때 다른 이에게 그 긍휼을 베푸심으로 그 나라를 채워 가십니다. 이에 대해 누구도 자만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지만 그 백성은 결코 교만할 수 없으며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신비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복음의 섭리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있습니다(11:33~36).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면서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려 할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이른 하나님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방인들 역시 구원받게 됐다고 교만해져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당했던 것과 같은 일을 당하리라는 바울의 경고를 통해 우리 후세들에게 바른 신앙을 전수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모든 가정에 참된 진리를 묵상하고 가르치는 모습이 뿌리내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