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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새 언약 백성이 사는 법

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바울은 로마서 11장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는,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선포했고, 교회가 새 이스라엘과 새 언약 백성이 됐음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유대인에게 단순한 종교적 제의를 넘어 윤리적 기준이며 삶 저변에 깔린 가치관이요, 문화였습니다. 또 율법에는 하나님의 뜻과 성품이 계시돼 있기에, 이방인들이라고 해서 율법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킴으로써 구원받지는 않지만,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마지막 부분에서 새 언약 백성이 된 교회가 어떻게 하나 돼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예배, 일상의 영적 예배로(롬 12:1~2)
바울은 새 언약에 의해 세워진 교회, 곧 성도가 어떤 원리에 의해 살아야 하는지를 비유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로 짧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렸지만, 새 언약 백성들은 더 이상 성전에서 예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몸을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는 매일의 일상 가운데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삶을 의미합니다(1절). 옛 언약의 이스라엘이 제사를 통해 거룩해졌다면, 새 언약의 백성, 교회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으로 거룩하게 됩니다(2절).

 

사회적 관계, 연합과 사랑(롬 12:3~21)
새 언약 백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됐습니다. 이는 서로 똑같아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는 동질성에 의해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을 용납함으로써 연합합니다. 각자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해 한 지체가 됩니다(3~8절).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해 한 몸이 됩니다.
결국 새 언약 백성들이 가져야 할 삶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교회 밖 사람들에게도 흘러넘쳐야 합니다. 사랑하고 배려하며 열심히 주를 섬기고, 늘 기도하고 박해자들까지 축복하며 모든 사람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즉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9~21절)이 새 언약 백성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정치적 관계, 선량한 시민(롬 13:1~7)
이스라엘은 원래 왕권 국가였지만, 새 언약 백성들은 국가의 형태를 갖지 않습니다. 대신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국가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합니다. 충실한 시민으로서 조세를 바치며, 마땅히 존중해야 할 권위를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옛 언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에게 순복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정치권력에 순복합니다.
그러나 이를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통치할 때에는 순복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경우에는 선지자들의 질타와 공격이 이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과 종말 의식(롬 13:8~14)
바울은 지금까지 설명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율법에 여러 금지규정이 있으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계명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8~10절).
둘째는 구원의 때, 곧 마지막 때가 가까웠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주님을 다시 만날 날에 대한 기대감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인식하는 자들은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게 마련입니다. 주님을 다시 뵐 그날을 바라보는 자들은 방탕한 삶을 멀리하고 오직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서로 용납하라(롬 14:1~15:13)
바울은 결론적으로 로마교회 내에 있었던 가장 현실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권면합니다. 로마교회에는 율법에서 규정한 음식법과 절기를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 때문에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이는 로마서가 다루는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바울은 다시금 음식법과 절기규례의 문제로 서로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주께 속했고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이라고 선포하며, 어찌 주님께 속한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겠느냐고 호소합니다(14:7~10). 중요한 것은 음식이나 절기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 평강, 희락임을 기억해야 합니다(14:17).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15:5~6).

 

새 언약 백성의 사명과 비전(롬 15:14~33)
바울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바울이야말로 새 언약 백성의 모범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 없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이방인에게로 보냄받았다는 사명을 분명히 드러냅니다(16절). 그리고 그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편만하게 복음을 전합니다(19절).
또한 바울은 미래의 사명 완수에 대한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당시 땅끝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겠노라는 비전을 로마교회에 나눕니다(23, 28절). 그리고 자신이 서바나로 갈 때, 로마교회가 자신을 후원,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24절).
그런데 바울의 이동 방향은 서쪽 끝 서바나가 아니라 동쪽의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인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의 헌금(연보)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이방인 교회의 섬김을 통해 교회는 하나임을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26~27절).
바울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도를 부탁합니다(31절). 실제로 바울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체포돼 가이사랴 감옥에 수감됩니다(행 21:27~36, 23:23). 그리고 죄수의 신분으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는 고생길을 거쳐 로마로 가게 됩니다(행 27~28장).
바울은 이처럼 복음에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고, 그 사명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동쪽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비전은 서쪽의 땅끝 서바나에 있었습니다. 그는 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새 언약에 속한 사람의 모범이었습니다.

 

사랑의 안부(롬 16장)
마지막에 으레 나오는 안부지만, 로마서에서는 바울이 얼마나 성도 한 명 한 명을 귀히 여기고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었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각 이름에는 그가 바울과 어떤 관계였는지, 바울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며 축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 있습니다(1~16절).
문안인사 중에도 바울은 언제나 교회가 분쟁에 휩싸이지 않고 연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17~20절). 오직 모든 민족으로 자기 백성을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모든 교회가 하나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시 67, 68편)
로마서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시편 67편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심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분하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음을 이미 구약의 시편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68편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몸소 이스라엘을 이끄셨으며(7절), 날마다 그 백성의 짐을 지시는 분(19절)임을 노래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주어짐을 이미 구약의 시편 기자도 알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68편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쳐서 깨뜨리실 것을 노래하지만(1~2절), 이는 궁극적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앞에서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31~32절).
이처럼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구원하시는 역사는 결코 신약시대에 와서야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창 12:1~2) 모든 민족을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구원의 역사를 진행해 오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과 언어의 찬송을 받으실 분입니다(계 7:9).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십니다. 온 땅의 주인이신 주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더 잘 섬기는 길을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찾아가시는 6월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