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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29일자 <타임> 표지에 ‘살아 있는 성인’으로 소개된 테레사 수녀. 냉소적인 무교의 방어벽을 깨고 말콤 머거릿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킨 것도 테레사 수녀의 희생적인 삶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테레사는 젊어서 수녀가 되어 캘커타의 한 가톨릭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고, 나중에는 그 학교 교장이 되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괜찮은 집안 출신이었지만 학교의 위치는 캘커타 최악의 빈민가에 인접해 있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통해 테레사 수녀의 삶을 새롭게 인도하기 시작하셨다. 1946년 9월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테레사 수녀는 본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하나님의 아주 분명한 부르심”을 받았다. 이미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에 스스로 그것을 ‘소명 속의 소명’이라 불렀다. 교회 지도자들의 반대와 오해〉?불구하고 테레사 수녀는 마침내 집 없는 사람들과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역을 시작했다. 몇 년 사이에 수백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나섰고, 지금은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
자신의 일생에 대한 TV 특집 프로에서 테레사 수녀는 어떻게 그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들려주었다. 어느 날 그는 길가에 누워 죽어 가는 여자를 보고 자기가 돌봐 줘야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두 발은 쥐가 반쯤 갉아먹었고, 상처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여자였다. 바로 그날, 사역이 시작되었다.
이 사역의 성장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인터뷰 진행자는 자기가 들어 알고 있는 내용, 즉 길가에 버려져 죽어 가던 4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와 그 동역자들로 인해 생명을 찾게 된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간단히 이렇게 대답했다. “맞아요. 하지만 1946년 그때 그 첫 번째 사람을 돌보지 않았다면 다른 42,000명을 결코 돌보지 못했을 거예요.” 온 세계는 테레사 수녀가 그 첫 번째 부르심에 순종으로 응답한 것을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