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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헌신의 씨앗, 빚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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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가 가족과 함께 프랑스 콜마에 갔던 날이다. 그들은 마을 광장에 가 브뤼아 장군의 동상 앞에 섰다.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바르톨디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어린 알버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위대한 장군이 아니었다. 동상 밑 사방 모서리에는 그보다 작은 네 개의 인물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쇠사슬에 묶인 아프리카 노예였다. 힘이 넘치는 듯한 그는 거의 알몸으로 머리를 땅으로 숙인 채 앉아 우울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 슈바이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인상으로 남았다. 그의 책 『유년기와 청년기 회고록』에는 그 인물상과 거기서 받은 인상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헤라클레스의 몸매를 갖춘 인물이었지만 얼굴은 생각에 잠긴 슬픈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가족들이 콜마에 갈 때마다 나는 꼭 시간을 내 그 인물상을 찾아가곤 했다. 그 표정은 내게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의 참상을 말해 주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콜마에 갈 때면 그곳을 참배한다.”
자라면서 슈바이처는 고통 받는 세계를 위해 기도했다. 그 동상이 일깨워 준 것이다. 어린 시절에도 그는 자신의 평탄하고 행복한 삶이 선물임을 믿었으며, 그런 선물을 받은 데 대해 늘 빚진 마음을 가졌다. 그런 생각은 1886년 어느 봄날, 혼자서 편안하게 부활절 휴가를 보내던 슈바이처의 나른한 마음속에 다시 날아들었다. 그는 이른 아침의 고요를 만끽하며 반쯤 깬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 그의 창턱에 내려앉은 한 마리 참새처럼이나 상서롭게, 갑자기 자신의 숙명이 날갯짓하듯 시야에 들어왔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평탄한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깨어났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기 전에 결심했다. 인류를 위한 이후의 본격적 봉사를 위해 서른 전까지 과학과 예술에 당당히 헌신하겠다고.” 그 후 그는 음악과 종교와 철학을 공부해 각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