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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사랑으로 하나님께 보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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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목사님 두 분이 만났습니다. 한 목사님은 아들이 다섯이고 다른 목사님은 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대화를 하다가 딸 하나밖에 없는 목사님이 친구 목사님에게 “자네는 아들이 다섯이나 되니까 하나는 내게 양자로 주지”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님이 무심결에 “그러지 뭐” 하고 대답을 했답니다. 그러나 집에 가서 그 이야기를 꺼내 놓고는 사모님께 얼마나 야단을 맞았을까요?
그래도 이분은 워낙 의리파라서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다섯 중 누구를 양자로 주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아들들이 잠들어 있는 방문을 열었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아들 다섯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어떤 아들을 양자로 줄까? 장남? 장남은 안 되지. 상속자인데 어떻게 다른 집에 주겠어?’
그래서 첫째 아들은 제쳐놓고 둘째 아들을 봅니다. ‘이 녀석은 다섯 아들 중에서 제일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인데 안 되지.’ 셋째 아들을 보았습니다. ‘이 녀석은 나를 쏙 빼닮았어, 제일 미남이고. 셋째는 도무지 안 되겠어.’ 그래서 넷째를 보았습니다. ‘이 녀석은 병치레를 자주 하고 너무너무 불쌍해. 이 녀석을 줄 수는 없지.’ 이제 막내 하나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 귀여운 막내를 어떻게 줄 수가 있나.’
한 아들도 주기 어려운 자기 마음을 확인하던 그날, 그 목사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를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 ~35).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달고 다니는 배지, 곧 상징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또 그분을 통해서 참사랑을 알았고 체험했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