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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도시락을 싸들고 논둑에 나가 쑥을 캘 때의 일이다. 한나절 쑥을 캐고 도시락을 먹은 후 해가 저물 때까지 또 쑥을 캐는데 갑자기 빨래를 하고 돌아오던 먼젓번처럼 허기증이 도지는 것이었다. 도시락까지 까먹었건만 워낙 부실한 음식이라 창자가 달라붙는 듯한 허기는 가시지 않았고,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언덕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떠보니 이게 어쩐 일일까. 딸기밭도 아닌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딸기가 눈앞에 지천으로 널려 있지 않은가. 그것도 붉고 탐스러운 딸기가. 하나님이 광야에서 굶어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만나를 예비했듯 어머니를 위해 먹음직스런 딸기를 준비해 주셨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 딸기를 배가 부르도록 실컷 따 먹고 빈 도시락에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일생은 한마디로 희생과 인내의 삶이었다. 평생을 헐벗고 굶주리며 지냈지만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싸우면서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주어진 운명에 대해 원망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면회 갈 때마다 꼭 성경 한 구절씩을 외워 가서 아버지께 읽어 드리곤 했다. “만일 당신이 신사참배 하면 내 남편 아닙니다.” 이렇게 어머니는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머니는 장부자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곤 했다. 남의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해주고 돌아오는 날, 치마폭에 싸온 음식을 우리 앞에 내놓으며 하던 말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나 먹으라고 내놓은 것인데 너희들 생각에 목에 넘어가야지. 그래서 주인 몰래 싸가지고 왔다. 많이들 먹어라.” 어머니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가끔 부엌에서 일하다 빈혈 증상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당신의 몫으로 나온 음식을 먹지 않고 우리 남매들을 위해서 싸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