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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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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나는 70평생 동안 한 번도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삽니다. 세례를 받은 것과 시집을 낸 것이 그렇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면 망령이 났다고들 합니다. 요즘엔 그것을 점잖게 알츠하이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꼭 그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질문은 한 가지이지만 묻는 사람들의 말투는 제각각 다릅니다.
예수님을 이웃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하는 안티 크리스천들은 경멸조로 묻고, 카뮈의 경우처럼 신 없는 순교자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은 배신자를 대하듯 질책하는 투로 말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금시 혀라도 찰 듯이 혹은 한숨을 쉴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예수쟁이 됐다면서-”라고 내뱉듯이 비웃습니다. 오랜 세월 글을 써 왔지만 누구도 내 면전에다 대고 ‘글쟁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어느새 나를 ‘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따금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욕쟁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아요. 화내지도 않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갑자기 성인이 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얼굴과 거동에서 나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에 이미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니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이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도 거북한 무엇이 암종처럼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가 봅니다. 겉으로는 강한 싸움꾼인 척하지만, 옆에서 누군가 한마디 훈수를 하고 조금만 역성을 들어 주면 금시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약한 무신론자들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