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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정체는 하나님을 향한 반감과 적대입니다. 신자가 은혜로부터 멀어져 하나님께 대하여 권태를 느끼는 시기, 곧 싫증의 기간이 상당히 지나가고 나면 신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대적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신자 중 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우리가 은혜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면 마음에 한없는 기쁨이 넘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셔서 기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간구하면 물질을 주실 때도 있지만 그때에도 물질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명예를 높여 주셔서 기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높아진 우리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 모든 삶의 정황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 제일가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바르고 건강하게 장성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그 자녀들에게서 오는 어떤 물질이나 보상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기쁨의 본질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 때문에 기뻐한다면 자녀들이 능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때에는 아무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공급해 주는 물질 때문이 아니라, 자녀들과의 관계 그 자체 때문에 부모는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사랑의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누리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면 형제자매들의 존재 자체 때문에 행복해집니다. 그들에게서 얻는 세속적 유익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맺은 관계 속에서 누리는 사랑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 관계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