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과월호 보기
예수님. 입술이 갈라지고 입이 부르튼다. 목이 너무 타 들어가 침조차 삼킬 수 없다. 목소리는 잔뜩 쉬어 말도 못한다. 그분은 목마르다. 그분의 입술에 마지막 물기가 닿았던 때를 찾으려면 다락방의 식사 때로 족히 열두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포도주를 입에 대신 후 예수님은 매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멍들고 찢겼다. 십자가를 지셔야 했고 죄를 지셔야 했다. 단 한 방울의 물도 그분의 목을 적셔 주지 못했다. 그분은 목이 마르다.
왜 그분은 가만히 계시는 걸까? 얼마든지 능력이 있지 않은가? 물 항아리를 포도주 항아리로 바꾸시지 않았던가? 요단 강에 벽을 세우고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지 않았던가? 말씀 한마디로 비가 그치게 하시고 파도를 잔잔케 하시지 않았던가?
이런 질문에 덧붙여 물어야 할 질문이 또 있다. 그분은 왜 사마리아에서 피곤하셨고 나사렛에서 괴로우셨고 성전에서 화나셨을까? 왜 갈릴리 바다의 배 안에서 주무셨고 나사로의 무덤에서 슬프셨으며 광야에서 배고프셨을까? 왜? 그분은 왜 십자가에서 목마르셨을까?
그분은 목말라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셨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되셨다. 여섯 시간 전에 누군가 그분께 마실 것을 드렸었다. 그러나 그분은 거부하셨다. 못 박히시기 전에 누군가 마실 것을 드렸었다. 마가는 그 포도주에 몰약을 탔다고 말했다. 마태는 쓸개 탄 포도주라고 표현했다. 몰약과 쓸개에는 둘 다 감각을 마취시키는 진통 성분이 들어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지 아니하셨다. 약물의 마취를 거부하셨다. 고통을 그대로 다 느끼려 하신 것이다. 왜? 왜 그분은 그 모든 감각을 견디신 것일까?
당신도 그런 아픔을 느끼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당신도 피곤하고 괴롭고 화나리라는 것을 그분은 아셨다. 당신도 아픔을 겪으리라는 것을 그분은 아셨다. 몸의 아픔이 아니라면 영혼의 아픔을… 너무 아파 약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을, 당신도 목마르리라는 것을 그분은 아셨다.
물의 목마름이 아니라면 적어도 진리의 목마름을, 목마른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우리가 깨닫는 진리는, 그분은 이해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이 이해하시기에 우리는 그분께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