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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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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가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하던 무렵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무척 똑똑했던지라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논문을 써서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다. 논문을 본 프로이트가 그것을 출판할 정도로 그는 아주 우수했다.
프랭클은 간호사와 결혼한 직후 학문을 더 갈고 닦기 위해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자신만 비자가 나온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없었기에 어떤 표징을 보여 달라고 간구했다. 하루는 집에 오자 아버지가 그에게 나치 청년들이 파괴한 유대인 회당에서 가져온 대리석 한 조각을 보여 주었다. 그 대리석 조각에는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적혀 있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표징으로 여겼다. 미국에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고, 아내와 함께 부모님 곁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곧이어 독일군이 그의 온 가족을 수용소로 보냈고, 부모님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훗날 아내도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수용소에 있는 동안 프랭클은 니체의 어록 하나를 묵상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 낼 수 있다.”
비록 독일인 간수의 기분에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아슬아슬한 삶이었지만 그는 깨달았다.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지에 달렸음을 말이다. 그는 계속 아내와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훈련을 했다. 또한 다른 수감자들을 상담해 주고 위로해 주며 도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아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지탱해 나갈 소망과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절망을 거부했다. 고문과 배고픔의 극심한 위협 아래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으며 어떤 타협도 거부했다. 앞으로 얼마를 살든 자신의 믿음과 목적에 일치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