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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2일, 나는 결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틈만 나면 소록도에 가던 나는, 그날도 소록도 법당에 있었다. 평소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때는 신기하게도 그 시간이면 눈이 떠졌다. 법당에 나가 가부좌를 틀고 30분간 좌선을 한 다음 목탁을 치며 염불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염불이 되지 않고 엉뚱한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며칠 후 며칠 후 …(딱딱딱딱) 며칠 후 며칠 후 …(딱딱딱딱) 요단강 건너가 …(딱딱딱딱)”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처음에는 ‘내가 멸치가 먹고 싶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하려고 해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곧 이 소리를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이 났다.‘아, 장례식 때 들었던 찬송가다!’
나는 기가 막혀서 어쩔 줄 몰랐다. 그것은 며칠 전 화장터에서 들었던 기독교인들의 찬송가 가사였다. 따져보면 며칠 전에만 들었던 것이 아니다. 지난 7년간 소록도를 드나들 때마다, 특히 소록도에서 열린 장례식 때마다 수도 없이 들었던 찬송가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의 후렴구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염불을 해야 할 땡중의 입에서 어떻게 찬송가가 터져 나올 수 있는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말이다!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목탁을 내려놓고 법당을 뒹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이 콧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오직 “며칠 후 며칠 후”라는 찬송가 가사뿐이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나 눈이 멀었던 사울처럼, 그때의 나도 성령에 온전히 휘감긴 것이다. 사울이 그 즉시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했던 것처럼, 나도 그 순간 성령의 임재 가운데 찬송가 후렴구를 반복하며 방언을 하면서 크게 변화되는 체험을 했다.
그것은 온전히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성령님이 나를 찾아와주신 사건이었다. 그것은 어떤 말이나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