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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2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인 김범일 장로는 김용기 장로의 차남이다. 김범일 장로는 고등학생이던 16세 때 농장에서의 과도한 노동량과 긴장감, ‘내 인생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생각에 가출을 했으나, 집에서 설득하여 7개월 만에 돌아갔다고 한다. 농장에서는 매일 새벽 4시에 종을 치면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는데, 김 장로는 새벽종 치기를 10년이나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래에 대한 불안함, 자신의 남루한 행색, 유학 가는 친구를 보면서 느끼는 허탈감에 더해 아버지의 엄격함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또다시 가출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읽고 사흘 동안 울면서 기도하다가 더는 불효하지 않고, 죽더라도 아버지의 일터에서 죽기로 결심하고 농장으로 되돌아갔다.
1962년 2월, 가나안 농장의 성공으로 ‘제1가나안농군학교’가 건립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3월에 이 학교에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로는 이런 일을 보면서 비로소 아버지 김용기 장로의 사역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김범일 장로는 1973년 원주에 제2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할 때, 혹시 자신이 나중에 마음이 변할지 모르고, 개인의 안일과 부를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건의하여 재단법인으로 만들었다. 1988년 아버지 김용일 장로가 세상을 떠날 때, 김 장로에게 “네가 고생을 제일 많이 했다. 내가 너에게 해준 것은 사랑밖에 없다. 너는 내 뒤를 따라라”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유품은 구국기도실 열쇠밖에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