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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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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면 예외 없이 걸려 오는 전화가 있다.
“목사님! 저 이번 주일에 교회 못 가요!”
“왜 못 오니?”
“그냥요.”
“은숙이가 보고 싶은데도?”
“그럼 갈게요.”
은숙이는 올해 열세 살이다. 한창 꿈 많은 나이의 소녀다. 부모가 다 계신 가정의 딸이지만, 두 살 때 실명하여 주위의 보이지 않는 냉대와 소외 속에서 성장했다. 처음 얼마간은 가족의 따뜻한 정과 보살핌도 있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관심 밖의 귀찮은 존재가 된 것이다.
자라면서 점점 은숙이의 해맑은 얼굴에는 그늘이 지기 시작했고, 언제나 구석진 곳에서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석고상 같은 그 소녀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그녀는 내가 목회하는 새빛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집에서 하던 자세 그대로 언제나 얼굴을 수그리고 말도 하지 않는다는 주위의 귀띔이 있었다.
하루는 그 소녀의 곁으로 가서 “숙아, 너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다고 하는데 왜 얼굴을 숙이고 다니니?” 하고 물으니, 그 아이는 그만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말 한마디에 오랜만에 따사로운 정을 되찾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맹인학교가 그렇듯이 우리 학교도 기숙사에서 함께 기숙하면서 공부를 한다. 그러나 방학하면 모두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작년 겨울방학의 일이다. 방학 때면 으레 일어나는 일이지만 지난 겨울에도 두 어린이가 집에 돌아가지 않게 해 달라고 눈물겨운 호소를 했다. 그중의 하나가 은숙이었다. 집에 가 봐야 반겨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와 형제가 있어도 사랑과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은숙이도 올 여름방학에는 스스로 집에 가겠다고 할 만큼 명랑해졌다. 같은 시각장애인의 처지에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관심을 갖다 보니 어느 정도 자신감까지 얻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