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홍수시대에 절제의 미가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든다. 대화를 할 때도 여백이 필요하다. 말과 말 사이에 쉼표가 있어
야 편안함을 느낀다. 쉴 새 없이 말하는 사람은 내적으로 공허하다는 뜻이다. 대화가 끊기는 순간 불안감을 느끼면 계속 말
을 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침묵이 더 강력한 언어가 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사랑한다고 나에게 있는 것을 갑자기 다 주려고 하면 상대는 두려움을 느낀다. 24시간 늘 함께 있는 부부
는 좋을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싸움이 잦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서로의 관계 안에 여유 공간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생각의 세계 속에도 여유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내면세계가 무질서해진다. 생각이 많아 피로
가 가중되면 우울증 같은 정서적 장애가 찾아온다. 가끔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집착하고 있는 것들과 거리
를 두어 생각을 비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성에서 아주 중요한 구제는 비움이다. 무엇인가 움켜쥐고 있는 욕망을 걷어 내야 한다. 아무나 비울 수 있는 것이 아니
다. 비움은 내적인 만족도가 높아야 가능하다. 비울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채워진 사람이다. 존재의 부요함에서 비움의 용기
가 나온다. 내적인 충만함이 없이 나를 비워 낼 수 없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보여 주신 한 폭의 그림이 있다면 ‘비움’이
다.
비움은 예수님의 존재 방식이었다. 움켜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집착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삶을 채우기 위해 자기중심적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으셨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셨다. 비움의 정
점에 가 보면 그곳에는 십자가가 우뚝 서 있다.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삶의 원리는 비운 만큼 부요해진다는 것이다. 비워야
채워진다. 버려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