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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어려운 일은 우리도 같은 삶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자신을 비워야 한다. 우리도 사리사욕에 죽음으로써 예수님을 따라서 한 걸음씩 사다리를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향성은 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내려가기로 날마다 의지적으로, 능동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논리를 구사해야 한다. 내려가는 일이 때로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그것만이 크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따르신 길 - 우리에게 따르라고 하신 그 길 - 은 이치에 닿지 않았다. 그것은 말이 안 되었다.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기에 그런 자멸 행위를 요구하신단 말인가? 그리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왜 그런 행동 명령을 따른단 말인가?
두 질문 모두 답은 하나다. 사랑이다. 자진하여 강등되시고, 일부러 줄어들어서 잃으시고, 당신과 나의 죄 값을 영원히 치르려고 죽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사랑 이야기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아들에게 내려가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순종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수혜자이자 그분을 따르는 자들인 우리도 똑같이 하도록 부름 받았다. 최고의 두 계명이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동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또 말하지만, 예수님의 경우처럼 사랑이 요구하는 내려감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능동적인 - 종종 큰 대가가 따르는 -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