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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다르게 사는 자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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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깁스와 부목에 고정되어 있는 몸으로 비서에게 러스크 박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여러 번 졸랐다. 너무나 존경스러운 분이었고, 앞으로 살면서 나의 역할 모델로 삼고 싶은 분이었다. 나의 간곡한 청은 한 달 만에 이루어졌다. 나는 러스크 박사의 ‘인형의 방’에서 그와 약 15분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미 팔순이 넘은 나이였지만 그는 목소리와 눈빛에 힘이 넘쳤다. 그는 내 손을 힘차게 잡으며 말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병원에 온 후로 나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지며 하늘을 원망했었다. 그때 누군가를 불구로 만들어야만 했다면, 그것이 하늘의 뜻이었다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나를 고르셨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그때까지 나는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셨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하나님이 아니었다. 서머솔트를 하다가 목뼈를 부러뜨린 건 분명히 내가 한 일이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은 내 옆에서 내가 뛰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셨다.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내 몸을 좀 더 높이 띄우실 수도 있었고, 가까스로 손으로 땅을 짚게 만들어 큰 사고를 피하게 하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냥 바라보기만 하셨다.

  왜 막지 않으셨을까? 나는 하나님의 자식인데, 자식이 다치는 걸 왜 그냥 바라만 보셨을까?

  인형의 방에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님은 내가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오로지 체조에 목숨을 걸고 금메달 하나만 바라보며 부모님 속을 썩이는 이승복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새롭게 일어서는 이승복,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서로 기대며 어려운 장애물을 씩씩하게 뛰어넘는 이승복, 그 모습이 보고 싶으셔서 하나님은 나를 다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었다. 어쩌면 그 후에는 더 큰 계획을 준비해 두고 계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