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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설교를 듣는 중에 나는 또다시 울음보가 터졌다. 그리고 너무나도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네 아들로 인해 감사해 본 일이 있느냐? 네 아들이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는 그 아들로 인해 한 번이라도 나에게 감사해 본 일이 있느냐?”
나는 이때까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가 감사할 수 있는 자식은, 적어도 부모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학업 성적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태도와 뛰어난 재능으로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자식이 아닌가. 그런데 내 아들 진후는?
나는 부모님에게 효자요, 큰 자랑거리였다. 그렇더라도 내가 부모님께 고작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말 세속적인 기쁨 외에 무엇을 드렸단 말인가? 진후가 내게 했던 것처럼 영생의 소망, 구원의 확신을 드린 적이 있던가? 진후의 고통을 통해 우리 부부는 신앙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지 않았던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까지 진후를 큰 짐으로 여기기만 했지, 네 아들 진후를 통해 너와 네 가족이 구원받은 것을 모르고 있지 않았느냐?”
그동안 나는 진후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아픔과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의구심을 가졌었다. 의문의 먹구름이 걷히는 순간, 이제까지의 고통은 나를 위한 축복의 통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후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진후가 자살을 시도하던 날, 추락하던 차가 작은 소나무에 걸리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내가 내 힘으로 진후를 살려낼 수 있었던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지 않은가. 나는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떠올리며 나의 잘못을 고백했다. 나의 교만함, 불만에 가득 찬 생활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