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과월호 보기
선교사로 떠날 생각을 하면서 경제적인 면이 가장 걱정되었다. 당시 우리는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많지 않은 빚이었지만 상환해야 했다.
아울러 이삿짐을 보내는 비용, 세 식구 비행기 표, 자동차 구입, 거처 마련 등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마련해 주신 사택에 살았기 때문에 남들처럼 뽑아 쓸 전세금이 따로 없었다. 신혼 초에 있었던 약간의 전세금은 내가 군대 있을 때 교회 짓는 헌금으로 드렸다. 경제적인 문제는 앉아서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렇듯 어수선하고 분주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지 한 달쯤 됐을까, 선교국으로부터 내가 인디언 선교사로 지명되었다는 파송장을 받았다.
이후 준비는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미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에서 초청장을 보내 주었고, 대사관의 비자 인터뷰는 2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금세 우리는 5년 동안 선교사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았다.
파송예배를 드리기 2주 전에 서초중앙교회 조세제 담임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광고해 주셨다.
“여러분, 이상혁 목사님이 인디언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두 달 전에 제게 알려 왔습니다. 인디언 선교를 하시던 전임 선교사가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공석으로 있던 자리인데, 이 목사님이 귀한 결단을 내리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이 목사님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정성을 모아 주셨으면 합니다.”
목사님의 광고가 있은 후, 2주 동안 헌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성도들이 모아준 헌금은 모든 초기 정착비용을 감당하고도 남을 만한 액수였다. 나는 순식간에 채워지는 헌금을 보면서 전율과 공포를 느꼈다. 경제적인 문제로 한동안 걱정하던 아내는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