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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생명보다 귀한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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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로 뒤덮인 뱃전에는 자신의 생애가 끝나 감을 직감한 벽안의 청년이 서 있었다. 젊은이다운 패기와 성직자다운 사려 깊음이 새겨진 얼굴은 망설임과 결단 사이를 오가는 비장함으로 창백했다. 조선 내륙 선교의 사명으로 긴 여정을 거쳐 온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복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죽고 말리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입술이 떨려 왔지만, 이미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기로 한 그는 화살과 총알이 빗발치고 포연이 자욱한 갑판 위에서 목청껏 소리쳤다. “예수! 예수! 예수!”
   무너지는 구조물들과 난무하는 비명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듯 혼신을 다해 외치며, 배 바깥으로 정신없이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던지고, 남아 있던 전도지들을 뿌렸다. 드디어 한 권, 마지막으로 남은 성경을 쥐고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화염으로 가득한 갑판 너머 강둑에 분기탱천한 조선인들과 죽어 가는 선원들이 보였다.
   그의 주변에서만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소란이 그의 귀에서 단절되었다. 이름 모를 관목과 낯선 구릉이 펼쳐져 있는 강가 풍경만이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눈앞에는 고향 웨일즈의 비단결같이 펼쳐진 푸른 들과 강줄기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역자들, 그리고 가슴 저미는 슬픔으로 떠오르는 필생의 연인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의 모습이….
   결국 그는 ‘은자의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성경을 가슴에 품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험한 손길들에 의해 물가에서 끌려나온 그는 백사장에 두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청년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 그는 품속의 성경을 꺼내어 위협하는 병사에게 건네며 받기를 종용했다. 푸른 눈동자에 깃든 감정이 지나치게 초연하고 평안해 보였을까? 그 병사의 칼은 마지막까지 침착해 보이는 청년의 가슴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