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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시간의 저장소가 아닙니다.
휘파람 소리같이 지나가는 시간과 사건들을
욕망의 참나무통 안에 가두어 발효시키는 것
철 지난 포도알들이 노을처럼 불타다가 터지면
그때 당신은 내 일상의 기억들을 발효시키는
지하실의 어둠이 되어 찾아오십니다.
당신은 거기에서
오래 침묵하는 법과
아픔을 참는 법과
눈물 없이 망각하는 법을
일러 주십니다.
이제는 늙어 마지막 내 한 방울의 젊음이
가을 벌판에 쏟아지는 찬비가 되는 날
비로소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따르라 빈 잔에
눈물처럼 고이게 하지 말고
희열의 샘물처럼
사랑의 잔을 넘치게 하라
맹물의 기억은 오로지
당신의 지하 창고의 어둠 속에서만
진한 향기의 포도주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