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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았던 요셉의 영성은 성장하는 영성이었다. 계속 자라나는 영성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해서 영성이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영성은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성장하는 영성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꿈을 해석한 요셉은 곧바로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바로 왕은 어릴 때부터 황제 교육을 받아서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을 것이다. 그는 젊은 요셉이 멋지게 대책을 내놓고 나서 조금도 으쓱대지 않는 인격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성장하는 영성의 열매인 겸손함과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바로는 그 자리에서 요셉을 총리에 앉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영혼이 거듭난 초기에는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면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 어른과 같이 된다고 말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만 영적으로 미성숙하고 초라한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그는 영적 성숙으로 나가야 한다고 도전하는 것이다. 베드로도 같은 권면을 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바울은 “제발 자라다오”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강한 명령어로 “자라 가라!”고 말했다. 자라지 않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이가 스무 살이 되었는데도 여덟 살 정도의 체구를 가지고 있다면, 그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부모는 자녀를 정상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 사방팔방 뛰어다닐 것이다.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것은 병들었다는 증거다.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 영적인 순종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단해야 한다. 순종하기로 선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