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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건져 주시고…….”
노인은 분주한 지하철 통로를 헤집고 다니며, 여전한 레퍼토리로 외치고 있었다. 행색도 거의 변하지 않은 그대로였다. 옷만 겨울용일 뿐 모자에 쓴 판독 불가한 글이며, 가슴에 안고 있는 종이판까지.
여전히 사람들은 노인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불쾌하거나 비웃는 표정으로 외면했다. 남들이 저렇듯 회피하는 존재를 왜 나는 전율하듯 반가워하는 것일까.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조금 전까지 갈 바를 모르던 내 영혼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스 코리아 유관순, 어이, 미스터 안중근, 미스 춘향이…….”
청소년들을 보자 유난히 목소리가 커지며 다가가 외쳤다. 순간 노인의 표정은 순진한 아이처럼 밝아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정말 해맑은 아이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그들에겐 심심한 하굣길에 만난 미친 노인네일 뿐이다.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옆에 멈춰 서더니, 노인은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을 펴자 연초록과 산뜻한 연분홍 사탕 두 알이 있었다.
“아이가 인상이 참 좋아요, 하나님 사랑으로 귀하게 키우세요.”
갑자기 말투가 평소의 그 인자함으로 바뀌었다. 아이 엄마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보고 있었다. 노인은 아이의 작은 손 안에 사탕 두 개를 쥐어 주었다. 그 손을 클로즈업했다. 아이는 사탕과 노인을 멀뚱멀뚱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이의 손은 작은 것으로도 가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