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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품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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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애는 다 힘겹다.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장애가 있으랴.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은 아내는 입과 눈의 기능을 잃었다. 시력은 건강해도 자율신경을 잃은 탓에 눈도 뜨지 못한다. 눈을 뜨지 못하니 볼 수 없고, 구강이 건강해도 입을 열지 못하니 말할 수 없다. 손과 발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오직 듣는 기능만 살아 있을 뿐. 그럼에도 들을 수 있어 웃는다. 듣기만 해도 좋아한다.
성경에도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고 했는데, 10년 가까이 듣기만 하는 이 여자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것도 순종이다. 온몸으로 말씀에 순종하니 더 이상 뭘 요구하랴. 온전히 귀 기울여 듣되 말은 전혀 하지 않는 내 아내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다.
입을 열어 떠들다가 지치면 아내의 팔을 쓰다듬는다. 촉각이 살아 있는 아내에게 팔을 쓰다듬으며 사랑을 전한다. 말하기와 쓰다듬기, 건강한 부부들에게는 보잘것없겠지만, 내게는 사랑을 전하는 소중한 도구다. 그리고 내 사랑을 표현하는 전부다.
10년 가까이 낫지 않는 병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병든 아내와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치려다가 오히려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고치려고만 하다가 함께 사는 법을 놓쳐버린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은 버려둔 채 한방에 낫게 할 궁리에만 매달린다.
병든 아내를 품고 사는 것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상황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나도 아내의 병을 품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인생에 돋아난 가라지 같았다. 성질대로 확 뽑아버리고 싶었다. 처음엔 가라지인 줄 알고 뽑으려 애썼지만, 결국 뽑아버릴 수 없어 품고 살아간다.
지금, 아내의 병은 가라지가 아니다. 낫지 않아서, 인생에 없어야 할 것으로 생각해 쉽게 가라지로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품으면 된다. 낫지 않는다고 버릴 수는 없다. 품어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