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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백 년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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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때 한국의 한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곳에서 사역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있었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현지 사역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다.
아내와 딸아이도 처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나와 함께 생활하기 위해 부모님이 사시는 경기도의 집 근처로 이사했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가족만의 시간인지…. 하루 종일 아이와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식사도 같이 하고, 시장도 같이 가고, 병원도 같이 갔다. 아이가 울어도, 웃어도, 무슨 짓을 해도 예뻤다. 작은 집이었지만 어떤 궁궐이 부럽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용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하루는 목포에서 강의를 요청받아 내려갔다. 강의 시간을 기다리며 사무실 책장에 무슨 책이 있나 살펴보다가 유독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제목도 보지 않고 중간쯤 그냥 펼쳐보았다. 펼쳐진 책 속에서 사진 한 장이 보였다.
그 사진은 100년 전 조선 땅에 들어온 한 자매 선교사의 이야기와 함께 실려 있었다. 루비 켄드릭. 사진 속에 담긴 그 선교사의 무덤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만일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바치겠습니다.
조선에 온 지 8개월 만에 26세의 나이로 숨진 의료 선교사인 루비 켄드릭, 양화진에 묻힌 그녀의 묘비에 적힌 그 외침이 살아서 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스물여섯, 고작 8개월….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많은 꽃다운 나이였는데, 이 조선 땅에 무엇이 있기에 딱딱하고 추운 이 조선 땅에 묻혔을까?’
나는 얼음처럼 굳어져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내 심장 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시 그 땅으로 갈 수 있겠니?’ 폭풍우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도 없는 목포의 한 사무실에서, 100년 전의 한 선교사의 외침을 들으며 나는 다시 주님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