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내린 뒤끝 이맘때의 농촌 사람들은 새벽 일찍부터 삽을 들고 논에 나가 물대기에 바쁩니다. 제 논에 넘친 물은 물꼬를 터서 아래로 흘려보내 주고, 제 논에 물이 부족하다 싶으면 윗논 뚝 물꼬를 뚫어 적당히 물을 끌어다 채워 놓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논밭에 물을 끌어 대겠다는 욕구야말로 농부들의 제1본능이 아닐까 싶은 것이지요. 문제는 끌어다 댈 그 물의 절대량이 부족할 때 흔히 발생합니다. 이른 새벽 눈 부비며 부리나케 논에 나와 보니 밤사이에 누군가가 제 논 뚝을 헐어 물을 빼내 갔다고 칩시다. 머리칼이 곤두서고 눈이 뒤집힐 건 정한 이치가 됩니다. 농부에게 있어서 논물이란 핏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멱살을 움켜 쥔 논두렁의 대판거리는 예로부터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사태가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농부된 사람이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일단 제 논에 필요한 물을 대고 보자 하는 것이 상정(常情)으로 통하는데, 이를 두고 생겨난 문자가 바로 아전인수(我田引水)입니다.
올해로 나는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맞아들인 지 꼭 여섯 해를 맞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듯이 그간의 내 변모를 돌아보면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요약하면 ‘오직 감사’뿐입니다. 농부에게 물이 생명이듯 믿음의 세계에서는 말씀이 생명이라는 사실도 그동안에 체득한 은혜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물의 양이 유한(有限)한 대신, 말씀의 양은 무한(無限)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퍼다 쓰고 또 써도 말씀은 결코 메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만 빌면 누구나 맘대로 이 황금의 만능 샘을 마구 퍼다가 그냥 무한정 쓸 수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일 터이지요. 말씀의 주인이 별로 반겨하지 않을 듯한 일에도 마구 말씀을 퍼다가 자기 합리화의 방패막이로 애용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참 많은 듯합니다. 우리 식 종교의 맹점 중의 하나는 ‘좋은 게 좋다’는 풍조에 거의 무방비로 만연되어 있는 점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