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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하나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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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올림픽 준비로 서울이 떠들썩한 때에 녹음실에 파묻혀 앨범 제작에만 몰두했다. 최고의 것을 만들자는 단순한 생각에 가진 돈의 10배가 넘는 예산을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
욕심을 부려 당시 한국에서 가장 녹음을 많이 하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했다. 그리고 최선이라 말해도 후회 없기를 바라며 열심히 했다. 다행히 모자라는 제작비는 ‘돈암녹음실’에서 음반 발매 후에 갚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줬다. 그리고 음반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빨리 좋은 반응을 얻어 빚진 돈도 곧 갚을 수 있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박종호 찬양 사역의 신고식을 하고, 그해 가을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첫 콘서트를 열었다. 공연은 저녁 7시. 오후 2~3시쯤 되자 학생들이 기웃기웃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6시부터 서기 시작한 줄은 강당에서 학교 정문까지 1km나 되는 길을 가득 메웠다. 데모를 하는 줄 알고 왔다가 어리둥절해서 되돌아가는 전경들. 리허설이 끝나고 출입문을 열자 4000석이 5분 만에 꽉 찼고 자리가 모자라 2층 난간에도 여기저기 사람들이 걸터앉아 있었다.
그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 ‘저 사람들… 나를 보러 왔을까, 내 노래를 들으러 왔을까. 아니야. 그냥 하나님을 만나러 온 거야. 내가 아닌 하나님, 하나님을 만나러 온 거야.’
나를 떨리게 하는 것은 무대의 조명이 아니라 수만 개의 눈동자들이었다. 사람들에게 억지로 영향력을 주려고 하는 것은 내게 맞지 않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 눈동자들과 함께 나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서만 있듯이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준비된 것을 마음껏 나누길 바라며 노래가 바뀔 때마다 거울을 보듯 마음을 돌아보았다.
‘잘했어, 종호야. 너의 찬양을 듣고 있으면, 나는 행복해지는구나.’
내 길을 찾아 빈손으로 뛰어온 내 안에 하나님께 드릴 것이 또 하나 남아있었다. 나의 전부,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하나님이 내 안에 두신 하나님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내 삶이었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