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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게나, 처남!” 동석은 예배당에서 낯이 익은 영옥에게 다가갔다. 다친 다리에 칭칭 감아 놓은 무명천에는 상처에서 배어 나온 얼룩이 묻어 있었다.
영옥이 동석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가을바람을 묻혀온 동석의 차고 커다란 손이 영옥의 짧은 손마다 감싸였다. 아무 말 없이 서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떤 교감이 그들 사이에 흐르는 듯했다. 하늘을 물들이던 발그레한 노을이 두 젊은이의 얼굴에 쏟아졌다.
이영옥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돌아온 동석은, 집을 다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다 말고 어젯밤에 이영옥이 한 말들을 떠올렸다. “내사 이제 다리병신으로 평생을 살겠지만 낙담할 것도 없네. 다 하늘 뜻이지 않겄나? 성한 몸으로 사방팔방 돌아댕기면, 내 언제 조용히 앉아 하나님을 생각하겄나? 또 병신이 병신 마음을 안다고, 내 이래 다리를 절게 됐으니 몸 성치 못한 다른 사람 마음을 더 잘 헤아릴 것 아니가? 사실 그렇대이. 장인어른 따라 문둥이들을 좀 돌보았지만, 내 그 사람들 맘을 한 번도 헤아려보지 않은기라. 그냥 장인어른이 만드시는 만병수 약이나 나누어 주며, 그 볼썽사나운 몰골에 남몰래 얼굴을 찡그린 적이 어디 한두 번이가? 내는 그동안 혼자 누워 참 많이 생각했대이.”
장지문 사이로 스며든 달빛에 영옥의 얼굴이 하얗게 빛나던 밤이었다. 동석은 미소를 가만히 머금었다. 왜 그런지, 그는 영옥에게 무척 믿음이 갔다. “내는 다리가 부러져 누워 있으면서, 성경에 나오는 야곱을 생각했대이. 밤새도록 하나님과 싸움을 벌이다 다리가 부러진 야곱을 말이대이. 물론 내랑 싸움질한 놈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동네 불량배지만, 야곱이 평생 다리를 절면서도 하나님 사람으로 산 것처럼, 내도 이제는 더 확실히 하나님의 종이 된 기분인기라. 내 사실 이런 말 아무에게도 할 수가 없는 기라. 사흘 걸러 한 번씩 다리를 치료해 주러 오시는 장인어른한테도 말이다. 그런데 처남을 만나니, 나도 모르게 말이 쏟아지네.”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영옥은 나란히 누운 동석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