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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날의 사고는 나를 당황케 한다. 그 일로 많은 유익을 얻기는 했지만, 세상에 있는 아무 좋은 것이라고 해도 사고 자체를 좋은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날의 사고는 내게 끔찍하고, 비극적이며, 악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나 외에 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겪은 결과로 유익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비극 자체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단언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의 해악성과 그 결과가 가질 수 있는 유익성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 둘이 서로 같지는 않다. 후자는 전자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후자가 전자에게 합법성을 부여하거나 선한 것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나는 세 명이나 되는 가족을 잃게 된 이유가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거나, 다른 세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거나, 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돌아오길 바란다. 그들의 죽음이 결과적으로 나와 내 가족에게 어떤 유익을 제공했는지는 몰라도, 언제나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내 가족을 다시 살리고 싶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슬픔은 쓰라릴 뿐 아니라 감미롭다. 내 영혼은 비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침이면 새날이 내게 어떤 선물을 줄지 기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잠에서 깬다. 지난 3년간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살아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보통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맛보았다. 앞으로는 그때만큼 상한 심정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토록 온전해지는 경험 또한 다시는 해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사람인지 그때만큼 절절하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때만큼 죽은 것 같았던 적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내 영혼이 그때만큼 살아 있음을 느꼈던 적도 앞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서로 상극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슬픔과 기쁨, 고통과 즐거움, 죽음과 삶이 거대한 하나의 총합체를 이루는 일부분이 되었다. 나의 영혼은 한층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