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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용서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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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신앙 서적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더니 내일 제출할 독후감은 안 쓰고 계속 울기만 하고 있다. 너무 감동해서 그런가? 아니면 글도 쓰기 싫을 정도로 속상한 일이 생겼는가?
나는 아들의 심중을 알아보기 위해 “읽고 있는 책이 무슨 책인데?” 하며 책 표지를 보고는 내심 안심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그린 『사랑의 원자탄』 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울었던지, 아들이 아직 반도 못 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아들은 책상 앞에 이렇게 써 붙였다.
“그 사람이 너의 두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지?”
아들은 아마 손양원 목사님이 자신의 두 아들을 무참히 총살한 살인자를 양아들로 삼은 것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책에서의 감동이 며칠이나 갈까 하며 나는 그 섬쩍지근한 글귀를 떼어 버렸다. 그랬더니 아들은 한술 더 뜬다.
혹시 자신이 다른 사람의 권모술수에 모함을 받아 너무 억울해서 가슴을 치며 분노하고 있거든 “그 사람이 너의 두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라고 크게 소리 내어 외쳐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집의 표어가 되다시피 했다. 우리는 식구 중 한 사람이 화가 나고 억울해하고 있으면 얼른 그 잣대를 갖다가 대어 준다. 그러면 그 잣대는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한다. 나에게 아무리 잘못한 사람이라 한들 “그 사람이 너의 두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지?”에 대입하면 거기에 걸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오히려 나의 옹졸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