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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짓는 죄는 하나님께 주먹을 휘두르면서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짓는 죄이다.
우리의 죄는 소극적으로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소음과 분주함으로 자신의 삶을 채움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한다.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먹어라”라고 작은 소리로 말해도 아이들은 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바로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저녁 먹어라!”라고 소리쳐도 아이들은 내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아빠, 우리 놀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라고 말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랬다간 어떻게 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에 좀 더 은밀한 방법을 쓰려고 애쓴다. “아빠, 부르셨어요?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이것은 공개적인 거역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너무 바빠서,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막아 버린다. 우리도 똑같이 하고 있다.
페네롱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그치지 않으신다. 그러나 밖으로는 피조물들의 소음과, 안으로는 우리의 열정이 귀를 멀게 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우리 영혼이 깊은 고요 가운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을 침묵시키고, 우리 자신까지 침묵시켜야 하며,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음성은 다른 아무것도 듣지 않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는 부드럽고 섬세한 음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음과 흥분과 일에 중독되어 있을 때,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영적 고요의 문을 여는 것은 영적 두려움과 고독의 문을 여는 것일 수 있다. 하나님과 마주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