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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호스피스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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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초등학교에 갓 고등학교를 마친 19세 청년이 교사로 부임했다. 5학년 장난꾸러기 한 명이 그 선생님을 유독 따랐다. 그로부터 56년 뒤인 지난해 11월, 스승과 제자는 경기도 용인의 요양시설 ‘샘물의 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샘물의 집은 말기 암 환자 33명과 에이즈 환자 15명이 있는 곳이다. 스승 정온철 씨는 초등학교 평교사로 정년퇴직한 뒤 주말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 68세였던 제자 조씨는 죽음을 앞둔 암 환자였다. 조씨는 아내와 자식들과 사이가 나빠 외롭게 투병하고 있었다. 조씨는 스승의 보살핌을 받다가 한 달 뒤 스승의 권유대로 서울대병원에 각막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올해 나이 76세인 정씨는 샘물의 집에서 말기 암 환자들의 손발을 주물러 주며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죽어갈 때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씨는 2003년 교회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가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샘물의 집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봉사활동 초기에 정씨는 18세 육종암 환자를 돌보게 됐다. 그는 통증에 지쳐 “왜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냐”고 울부짖곤 했다. 정씨는 “그때, 어린 학생의 인생을 대신 사는 기분으로 평생 봉사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처음엔 경험이 없어서 환자들의 몸을 주무를 때, 손이 덜덜 떨렸고 기저귀 갈아 주기가 민망했다고 했다. 에이즈 환자들을 돌볼 때는 혹시 옮지나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머뭇거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씨는 “나중에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렇게 몸을 아끼나 자책했다”고 말했다. 7년차 고참 자원봉사자인 지금은 숨소리만 들어도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을 만큼 에이즈라는 병에 친밀해졌다. 7년간 정씨를 지켜본 샘물의 집 계광원 실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자신의 인생 마무리도 아름답게 준비하는 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