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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희생으로 쓰임받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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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에는 한 선교사의 무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로 평생을 바쳤던 영국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무덤입니다. 그가 아리카에서 죽었을 때 영국 의회는 그의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33년이나 아프리카를 위해 헌신했던 리빙스턴 선교사의 시신을 아프리카에 장사하기 원했습니다. 두 국가는 긴 회의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아프리카에는 리빙스턴 선교사의 심장을 남기고, 영국에는 리빙스턴의 시신을 보낸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캐나다에서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의 무덤에는 이런 글이 적혔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 형의 무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같은 환경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란 형제이지만, 그들의 인생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두 나라에서 시신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싶은 위인이 되었고, 한 사람은 세상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1957년에 노벨상을 받은 두 명의 알베르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의사이자 선교사인 알베르트 슈바이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알베르트 카뮈입니다.
노벨상의 상금으로 두 사람은 각각 10만 불씩을 받았습니다. 카뮈는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성 같은 별장을 사고, 평소 가지고 싶었던 자동차도 사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반면 슈바이처는 그 상금으로 아프리카 가봉 랑바레네에 병원을 지었습니다.
어느 날 카뮈는 자신이 꿈꿔왔던 그 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지금 그 별장은 누구의 소유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 세운 병원은 지금도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희생하고 섬기는 일에 엄두를 내어 그 인생이 풀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풀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