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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 세계를 다니며 크고 작은 모임에서 안식을 주제로 강연한다. 그런데 질문 시간에 거의 언제나 나오는 질문이 있다.
“아직 아이가 어린 사람들은 어떻게 안식을 실천합니까?”
대개 나는 질문한 사람에게 이름을 묻는다. “게리입니다.”
“반갑습니다, 게리. 부인의 성함은 무엇입니까?” “리자입니다.”
“아이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아홉 살짜리는 대프니, 두 아들은 브래든과 바이런, 그리고 아기는 매들린입니다.”
자녀들의 이름만 입에 올려도 게리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린다.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시는군요. 그렇지요?”
게리는 울컥하여 말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게리, 당신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고, 쉽게 상하고, 자녀들의 이름만 입에 올려도 금세 울컥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마태복음 18장을 언급한 뒤에 이렇게 말한다.
“게리, 얼마나 놀랍습니까? 어린 매들린은 아직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겨우 앉고 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그 아이의 것입니다. 매들린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삶에 들어가 있고, 망설임이나 태만이나 가식이나 회피함 없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이 말입니다.
지금 현재 당신과 리자가 주로 해야 할 일은 이 아기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 이 아기를 닮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 살아가는 것, 그리고 아무도 이 아기를 실족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이 당신들의 제2의 천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당신들 가운데 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매들린과 함께 있고 바이런과 브래든과 대프니와 함께 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 있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가깝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 아닙니까? 적어도 안식의 일부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