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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거친 십자가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십자가를 주제로 하는 사진은 흔한 심벌이니까 쉽게 찍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십자가의 생김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서 있는 배경과 분위기가 그 사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 내가 어찌 십자가를 소재로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마음에 드는 대상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하와이에 있는 마우이 섬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 있는 하나 만은 나처럼 조용한 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루는 지나가다가 산 아래 언덕에 십자가가 높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1세기 전 겨우 몇십호가 살았던 이 섬마을에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교회를 부흥시킨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 마을의 유지가 세상을 떠나자 미망인이 그를 기념하기 위해 언덕에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갑자기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나오면 이곳 특유의 뭉게구름이 필것이다.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를 즈음이면 틀림없이 하늘은 신비한 황금색 노을로 물들 것이다. 그런 장면을 배경으로 삼아 십자가를 실루엣으로 처리하면 어떨까? 괜찮을꺼 같다. 다음날 새벽 일찍 서둘러 올라갔다. 동쪽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십자가의 구도를 잡았다. 생각보다 좋아 보였다. 당시 나의 실력으로 까다로운 역광을 이용하여 무엇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모험일 수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는 실루엣으로 처리를 하고 구름을 비집고 나오는 햇살을 좀더 신비한 느낌이 들도록 표현해 보아야 하겠다는 나의 의도는 조금 살려 준 셈이다. 그리고 험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형틀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였던 골고다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무심코 지나갔더라면 산비탈에 서 있는 무의미한 십자가에 지나지 않았을 광경이 조금 발상을 전환시켜 본 나의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영감을 일으키는 또 다른 하나의 현실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