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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크리스천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영향력 있는 연예인 배출하고파

과월호 보기 우은진 기자

일기예보 나들 씨, 지웍스엔터테인먼트 차리고 다시 날아오르다


“처음 널 만나는 날 노란 세 송이 장미를 들고 룰루랄라 신촌을 향하는 내 가슴은 마냥 두근두근…”으로 시작하는 ‘좋아좋아’ 곡으로 수많은 청춘남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남성 듀엣 그룹 ‘일기예보’. 1990년대 ‘좋아좋아’, ‘인형의 꿈’ 등으로 단박에 스타가 된 일기예보의 나들 씨(본명 박영렬, 지웍스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만나보았다.
지금으로 치면 방송에 얼굴을 내밀기보다는 라디오와 콘서트에 집중하며 마니아 팬을 몰고 다녔던, 작사 작곡에 모두 능했던 싱어송라이터였다. 그가 10여 년 만에 다시 세상 속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그의 신분은 180도 바뀌었다. 바로 대중가수에서 목회자로,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바뀐 것이다.
백석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그는 CCM계로 간 것이 아니라 대중가요계로 돌아왔다. 다시 되돌아온 그의 각오는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장하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신 비전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절정의 자리에서 10여 년간의 연단을 통해 다시 돌아온, 전 일기예보 멤버인 나들 씨의 맑고 흐렸던 인생길을 되짚어 보았다.


‘일기예보’ 3집, 벼락스타가 되다
1996년 ‘좋아좋아’, ‘인형의 꿈’을 발표하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스타가 되었다”라는 말을 실감했다는 나들 씨. 그의 이름 나들은 ‘나’와 ‘너희들’을 합친 것으로, 함께 하모니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그가 대중가요계에 발을 디딘 것은 대학시절 남이섬에서 열린 MBC 강변가요제에 재미삼아 출전하면서부터다.
당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MC 이문세가 사회를 봤는데, 그와 친분이 있던 노영심 씨가 강변가요제가 놀러왔다가 ‘아침’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출전한 나들 씨의 모습을 인상 깊게 봤던 것. 강변가요제 동상을 차지한 아침 멤버들은 노영심 씨와 친해지면서 좋은 관계를 맺으며, 이대 앞 소극장 공연도 함께 펼쳤다. 급기야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음악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매주 방송 연주와 코러스 등 방송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첨가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활동들은 훗날 ‘일기예보’라는 이름으로의 음반발매를 훨씬 수월케 했다.
1993년 ‘일기예보’라는 이름으로 바꿔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1집보다는 2집으로 <가요Top10>에 그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3집 ‘인형의 꿈’이 터지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모두 10곡이 수록된 3집은 나들 씨가 5곡, 또 다른 멤버인 강현민 씨가 5곡을 각각 작사 작곡한 음반이다. 당시 매니저가 3집이 나오자마자 벌써 바람 잡혔다고 말했을 때조차 설마 했다고 한다. 그런데 1996년 대학로 거리와 신촌 거리에 있는 리어커마다 온통 일기예보의 3집 노래만 주구장창 흘러 나왔다.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젊은 남녀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리 노래가 알려졌구나’를 직시하고 기뻤다는 나들 씨. 그 후 밀려드는 라디오와 콘서트 공연 등에 집중했던 일기예보는 음악성 있는 팀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뜻하지 않던 고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다
3집이 워낙 잘되어 이후 활동도 기본적으로 죽죽 잘 이어졌다. 그런데 4집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간경화에 걸린 것을 알았다. 4집 활동을 끝내고 잠시 쉬게 된 그는 당시 여자 친구의 인도로 1997년 사랑의교회 청년부에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교회 갔을 때는 너무 착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놀이문화도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신도 점점 그들처럼 유치하게 노는 게 재미있어졌다는 점이다. 마치 중·고등학교 때처럼 순수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연예인으로서는 드물게 또래모임도 나갔다. 교회가 크다 보니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자신이 연예인이다 보니 호기심에 다가와 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한번은 청년부 리더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이성교제 시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했다. 그 리더는 당시 상담사역을 맡고 있던 나희수 목사님을 소개해줬다. 그 목사님과 상담을 하는데, 그 목사님은 그에게 창피한 질문들을 쏟아부었다. 목사님의 질문에 죄책감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느껴본 그는 순간 성령님께서 자신에게 임하시는 것을 느꼈다.‘나는 죽일 놈이다’라는 죄책감과 후회로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한참 울면서 대답을 못하던 그에게 목사님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과거의 죄의식이 사라지면서 이번에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그 후 그의 교회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청년부 한 사람 한 사람을 영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고, 촌스럽게 여겨지던 그들이 멋지고 예쁘고 지혜가 충만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그 자신은 부끄럽게 여겨졌다. 소그룹 모임에서 그들이 큐티와 말씀을 나눌 때 자신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보배와 같은 존재들처럼 보였다. 그 후 그는 전에는 색안경 끼고 보던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있고, 이게 진짜구나를 느꼈다. 1998년 2월에 주님을 영접하고, 청년부 제자훈련을 받았다.


간병 위해 시골생활, 주님을 깊이 만나다
1999년 결혼을 한 그는 신혼부부 다락방을 시작하고, 일기예보 5집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기예보의 또 다른 멤버와 음악과 활동에 대한 견해 차이도 컸고, 그렇다고 크리스천도 아닌 그를 신앙적으로 이끌 자신도 없었다. 결국 일기예보를 해체한 그는 당시 청년부 지도자이자 훗날 이랜드로 간 박성남 전도사의 적극 후원으로 크리스천 밴드 ‘디슨펠라스’를 결성하고, 2년 간 음악 활동을 하며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간이 또 문제였다. 건강이 악화된 그는 전라북도 진안군 시골로 갔다. 공해 없는 깊은 산속에서 자연식을 하며 채소도 먹고 제철 열매를 따 먹었다.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시골에서 3년을 보냈다. 이 시간은 그에게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막상 시골에 가니 할 일이 없었다. 성경책을 많이 읽고, 새벽기도 드리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는 시골 교회에서 난생 처음으로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드리며, 신앙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시골이라 생활비도 별로 들지 않았다. 텃밭을 가꾸고, 산과 들에서 먹을 것을 구해 먹고 살았다. 3년간 병은 완치되지 않았지만 산을 오르내리며 기초체력이 붙어 근육이 생겼고, 간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


제2의 인생을 꿈꾸게 된 터닝포인트
그는 시골생활 3년 동안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나고, 제2의 인생을 꿈꾸게 되었다. 사랑의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말씀 중심적 신앙칼라가 짙었던 그에게 어느 날 체험적 신앙이 다가왔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께서 팔을 벌려 그를 기다리시는 꿈을 꾼 것이다. 꿈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꿈이지만 너무 생생했고, 그 의미가 궁금해 당시 다니고 있던 시골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춘천에 있는 한 목회자를 소개해 주었다.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 목사님은 요한복은 5장 말씀을 그에게 주셨다. 바로 베데스다 연못 이야기였다. 안식일에 나면서부터 병자 된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럼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그리고 죄짓지 마라”라는 말씀을 들려주었다. 당시 그는 그 환자의 상황이 자신과 똑같다고 느껴졌다. 38세라는 나이도 같고, 병이 있는 것도 비슷했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짐을 싸서 기도원으로 담판을 지으러 올라갔다. 기도를 하고, 말씀을 봐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3일 더 기도원에 머물며 주님의 응답을 받고자 접수대로 갔다. 그랬더니 접수창구의 한 여 집사가 “하나님의 종이시냐?”고 물었다. 그 여 집사는 처음 접수할 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느 날은 서울서 올라온 한 목회자의 부흥회가 기도원에서 열렸다. 그런데 그 부흥사가 말씀 도중, 자리에 앉아 있던 그에게 손짓하며 “하나님의 종 될 분이 계시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앞으로 대중음악을 해야 할지, CCM을 해야 할지를 놓고 기도했었는데, 기도원에서 주신 몇 번의 사인을 놓고 기도제목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주님, 저를 주님의 종으로 부르신 거라면 확실한 사인을 주세요. 저는 의심이 많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신학공부 후 엔터테인먼트 설립,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연예인 배출이 꿈
그 뒤부터 그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바로 총신대 신대원을 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집도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하나님의 사인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 있었던 그는 간 기능이 나빠져 식도 적맥류 합병증에 걸려 출혈이 많아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을 때는 ‘건강도 책임지시겠구나’하고 내심 안심했는데, 막상 쓰러지자 너무 화가 났었다고 한다. 그런데 곧 ‘시골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곧바로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것도 집과 가까운 병원을 예비하셔서 생명을 연장해 주셨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 후 병원을 퇴원한 그는 한 지인으로부터 대중문화 사역을 하려면 최근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교수진들로 구성된 백석대로 가라는 조언을 받고, 학교를 바꾸었다. 성경고사를 위해 전북대 신학생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6개월간 시험공부를 했다. 그리고 2006년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3년간 신학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신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에는 음악목사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그가 이때 만난 것이 미제이모임이었다. 미제이 모임은 젊은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모임으로, 30~40명이 매주 화요일 저녁에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모임이다. 그는 그들을 보면서 젊은 연예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힘든 점, 연예인이기에 받는 엄청난 유혹 등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연예인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과 연예인을 통한 선교를 하면 좋겠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웍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것.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을 복음과 연결시키기란 기존 기획사와 연결되어 있어서 힘들기 때문에 새로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함께 선교할 연예인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비전을 가진 신실한 크리스천들을 음악적 재능이 있는 연예인으로 키워보고자 하는 비전을 품었다. 그들에게 왜 스타가 되어야 하는지, 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명해져야 하는지 함께 배우면서 성장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신부터 다시 연예인으로서 능력과 영향력을 키워야 했다. 2009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2010년 솔로음반 ‘날아올라’를 다시 발표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10여 년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음반 작업에 필요한 컴퓨터 장비를 구입하고, 프로그램 매뉴얼을 다시 배웠다. 음악 작업 외에 변화된 음악 환경으로 인해 다른 작업까지 처음부터 다시 배우자니 쉽지 않았다.


간이식 후, 다시 태어나 싱글앨범 발표
가까스로 음반을 만들고 앨범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대중성이 약했다. 요새 나온 음악과 비교해 보니 사운드도 빈약했다. 마침 간이식 수술을 받아 활동도 활발하게 하지 못했다. 그는 간이식이라는 대수술을 거친 이후, 지금까지 1년 동안 부작용도 없고, 간염바이러스 자체도 없어져 완전히 육체적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사실 간이식 수술은 마지막에 선택할 카드였는데, 아내의 간은 사이즈가 작았고, 형 두 명의 간도 보균자라 힘들었다. 결국 감옥에 가 있었던 사촌동생의 간을 이식받았는데, 오히려 감옥의 규칙적 생활로 인해 이식받은 간이 건강했던 것이다.
수술 후 축 쳐져 있던 그의 목소리는 피가 제대로 도니 활기차졌고, 팔에 힘줄도 보이기 시작했다. 희미했던 맥박 소리도 몸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 벗겨졌던 피부는 새살이 돋아 부드러워졌고, 식욕도 두 배로 늘었다. 수술 받은 지 딱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몸은 태어난 이후 가장 튼튼하고, 그의 영혼은 가장 충만하다. 하나님께서 적정한 때에 수술시켜 주신 것이다.
2011년 5월 그는 재미있는 노랫말 가사가 들어가 있는 ‘7시 반 그녀’와 ‘누나 식사부터 하세요’, 시사성이 있는 노랫말인 ‘물 좀 줘요’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전 세계에 한국이 영향력을 미친 적이 없었는데, 요즘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강타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교의 도구”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짜 복음이 제대로 그 사람 안에 들어가면 자유로우면서도 창의적인 음악이 만들어져 세상을 이끌 수 있다”며 “그동안 크리스천 문화나 음악은 오히려 신실할수록 대중적으로 다가서기 힘들었던 게 현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웍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최고의 스타를 만들고,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을 주께 돌이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매니지먼트를 사역으로 할 수 있는 사람과 대중 연예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정을 놓고 기도 중이다.
그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으로, 연예인으로서의 경험과 목회자로서의 새 신분을 갖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겠다고 덧붙인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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