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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365일 말씀을 벗 삼은 인생

과월호 보기 방민경

세월이 흐를수록 신앙에 대해 교훈해 줄 어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대구 서문교회를 시무한 이성헌 원로목사의 삶에서 오래 묵힌 장맛 같은 말씀 묵상의 깊이를 느껴 보자. 

 

 

평소 말씀 묵상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_ 목회자가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삶에 가까이 두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매일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나오는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와 그 역사를 아우르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 어떻게 하셨을까 묵상하면서, 오늘날 역사 가운데서는 어떻게 운행하고 계실까 자문해 보고, 묵상한다. 또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은 성경에서는 문맥의 관계를 살피고,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찾아가면서 그 의미를 파악해 본다. 이 또한 성경을 읽는 데 매우 흥미로운 방법 중 하나이다.
  등산이나 낚시와 같은 취미활동을 할 때도 말씀을 벗 삼아 하는데, 성경의 묵상할 부분과 보고 싶은 주석을 복사해서 함께 가져간다. 부피도 적고, 쉽게 손에 들고 볼 수 있어 아주 편하다.

 

말씀 묵상의 유익은 무엇인가요_ 목회자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설교를 준비하는 기본이 말씀 묵상이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설교이기 때문에 말씀 묵상은 특히나 내 한평생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새벽기도를 하다가, 때로는 찬양을 나지막하게 읊조리다가 별똥별이 밤하늘에 ‘싹’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말씀이 깨달아질 때가 있다. 직감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말씀의 깨달음이 포착될 때, 그때그때 메모한 것이 대부분 설교로 쓰인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깊이 묵상할 때는 일반적인 성경 지식의 한계를 넘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달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영감 어린 지식을 더욱 깊이 늘릴 수 있어 기쁘다.

고난의 때에 말씀이 어떤 위로가 되었나요_ 목회자에게는 교회의 위기가 곧 나의 위기이다. 특히 대화에 능숙하지 않았던 나는 고난의 때에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통해 많은 격려를 받았다.
  크리스천이라면 말씀 속에서 위로를 받고, 고난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얻고, 고난 가운데 참 평안을 누리기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나눠 주세요_ 로마서 8장 처음부터 끝까지이다. 성경을 반지로 비유한다면, 모든 성경이 황금이고 로마서 8장은 다이아몬드이다. 특히 로마서 8장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씀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구절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에게 고난은 똑같이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모든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든든하고 기쁜 소리인가. 결혼식 때나 성경을 선물을 할 때, 나는 이 구절을 꼭 기록하고 나눈다.

12월 대통령선거가 있는데, 크리스천의 나라 사랑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_ 내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정말 이 나라의 살림을 맡아 잘 경영하고, 국민을 인솔하기에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국제사회는 한 나라를 평가하고 거기에 투자하려 할 때 그 나라의 사회 자본을 본다. 여러 부분을 사회 자본으로 볼 수 있겠으나, 나는 우리나라가 정직, 진실, 근면을 사회 자본으로 삼기를 바란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신뢰하며 높은 가치를 두고 보는 이유가 국민의 정직, 진실, 근면에 있기를 소원한다. 이런 일에 크리스천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담고, 행동 하나하나에 성령의 열매 맺으며 사회 곳곳에서 땀을 흘린다면 대한민국은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나라 사랑이 아닐까?

믿음의 어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_ 요즘 크리스천 청년들은 말씀에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아닌 청년들도 있겠지만. 이것은 젊은이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교회의 어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말씀의 가치를 잘 물려주지 못한 책임도 있다.
  젊은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과 어른들의 관심사는 다르다. 그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말씀 또한 기쁘게 읽고 누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천지가 창조될 때도 물은 있었다. 그 물은 지금 우리가 마시는 물과 그 기본 성질은 같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손으로 떠먹던 것이 바가지로 떠먹고, 사기그릇, 유리잔 등으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젊은이들 세대에 맞는 접촉점을 찾아 말씀을 풍성히 누리게 할 수 있다면, 이만큼 귀한 유산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