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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함께 살아감의 미학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결혼이란 남남인 남녀가 만나 좋든 싫든 함께 살아야 하는 생활의 지속이다. 사는 동안에는 당연히 갈등과 마찰이 있게 마련이고, 언제부터인가는 서로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차츰 줄어 소위 권태라는 따분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난관이 될 수도 있는 이런 문제들을 지혜롭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간다면, 오히려 더욱 깊이 있고 견고한 부부의 정을 이루는 데 좋은 기회로 작용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의 시도조차 시들한지, 현재 우리나라 40대 이상 부부의 이혼율이 예전보다 부쩍 늘어 현재 사회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내 주변에서도 이혼을 했거나 별거 중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이혼을 생각하고 있을 만큼 부부 금슬에 금이 가 있는 부부들을 보게 된다.

 

   예로부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다. 아무리 칼로 베어도 물이 갈라지지 않듯, 부부는 싸워도 곧 화합한다는 뜻에서 내려오는 속담이다. 그러나 현대의 부부들에게는 다른 뜻으로 적용되는 것 같다. 마음속에 채워진 애정의 물이 식을 대로 식어 얼음이 된 것을 날카로운 칼로 베어 버리면, 일심동체가 두 개의 개체로 나뉘어 다시 결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또한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서로 따뜻하게 품어야 할 애정의 물이 식도록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면서 몇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됐다.
  우선, 참고 견디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 나이에는 하기 힘든 농사일을 하며 부모님을 도왔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자연스럽게 길러졌고, 그러한 은근과 끈기가 바탕이 되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적지 않다. 그래서 아내에게 서운한 점이 있어도 내 특기인 참을성을 발휘해 그냥 참고 만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웃고 만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모르는 속앓이를 할 때가 간혹 있다. 병이 될 만큼 심각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속으로 삭이다 보니 썩 개운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하면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가운데 정이 싹트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지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것이다. 어느 부부나 사소하고 하찮은 일로 밥 먹듯 싸우면서 살아간다. 그런 상황에서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제일 큰 문제는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잘못을 알지만 시인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때로는 아내의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어도 역시 자존심이 문제였다. 불필요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침묵을 깨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먼저 감싸 안으며 조심스럽게 화해의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무엇보다 큰 소득이 있다. 한발 먼저 물러난 자만이 그 후련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다툴 일이 거의 없지만 다투게 되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은 아예 없다.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먼저 사과를 청하는 이의 진심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날 결혼한 사람들은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 나라나 이혼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다. 영국의 한 의사는 가족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 여성 지도자는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기존의 결혼 방식과 가정 제도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으며, 현재 최고 수위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추세로 계속 나가면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결혼한 부부 중 반 이상이 이혼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실제로 미국 통계를 보면 이혼하지 않은 가정보다 이혼한 가정의 수치가 앞서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조기 이혼율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물론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복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법률상담소 자료를 보면 가장 많은 이혼 사유가 바로 ‘성격 차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성격이 똑같은 부부는 있을 수 없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만나서 평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닮지 않으면 안 되지만, 사랑하기 위해서는 약간은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
  물이나 세제에 장시간 접촉해 주부습진에 걸린 아내, 오랫동안 땀이 찬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무좀에 걸린 남편. 질병의 원인과 드러나는 현상이 다를 뿐, 이들은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주부습진이나 무좀은 증상이 도지면 치료를 위해 애를 쓰지만 증상이 잦아지면 이내 잊고 살아가게 된다.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 보고, 좀 낫는다 싶으면 전의 괴로움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다. 부부 간의 문제 역시 당장에 불거진 것만 해결되면 마치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어느새 잊고 살게 된다. 


 

  당장의고통을 피하려고 이혼을 도피처로 사용하면, 이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자녀와 가정, 사회와 나라까지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기 없는 결혼 생활은 없다. 때로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온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부부가 평생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강한 부부다.
부부는 서로 수용할 수 있을 때 강해진다. 평생을 두고도 고치지 못하는 배우자의 약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불완전한 사람끼리 만나 평생 불안정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자신은 불완전하면서 남에게 완전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다. 이 점은 부부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좋아서 탄 배가 느리다고 해서 바다에 뛰어들 수는 없다.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못 고치는 상대방의 문제와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혼한 사람 10명 중 8명이 이혼을 후회한다고 한다. 서로에게서 벗어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섭리에 의해 짝지어진 부부는 사람이 나눌 수도 없고, 그리 쉽게 깨질 수 있는 관계도 아닌 것이다.


 

   살아갈수록 백지처럼 진실하게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내게 주어진 행복이 작게만 보이는 욕심 때문에 힘들어지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솔직히 다 털어놓는 것도 힘들어진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점점 쉬워지고, 어렵고 힘들기만 했던 집안일이 점점 쉬워진다. 인생을 살면서 나를 포기하는 것이 점점 쉬워지고,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쉬워진다.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때,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이것이 부부이고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