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옥한흠목사
하버드 의대에서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연구하는 중에 ‘테레사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사는 사람을 보거나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며 내 마음이 착해지는 것을 느끼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신체에도 영향을 주어,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 물질 중 하나인 면역 글로불린 항체(immunoglobulinA, igA)의 분비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위해서 봉사하며 사는 사람을 생각만 해도 내가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착해지고, 몸에는 면역체가 생겨 육체도 건강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신문을 훑어보는데 가슴 뭉클해지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 글에 너무 감동을 받아 날마다 읽는 성경책 뒤쪽에 붙여 놓았다. 성경책 뒤표지를 열면 그 가족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충남 공주 어느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이모 경장의 이야기다. 20평 남짓한 주택에 장인, 장모와 그들 부부, 다섯 살 난 쌍둥이, 갓 태어난 아들, 이렇게 일곱 식구가 그가 벌어 오는 박봉으로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이 경장이 업무상 어떤 집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 집에는 초등학교 다니는 남매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만 남겨 놓고 가출해 버렸는데, 조사해 보니 그 아이들은 호적에 올라 있지도 않았다. 그 남매는 배가 너무 고파 남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다가 걸려서 이 경장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가 보았더니 찬물에 라면을 불려서 먹고 있었다. 얼마나 비참한지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한데, 우리가 데려다 키우자.”
이 말에 아내는 펄쩍 뛰었지만, 곧 남편의 진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출근한 뒤 그 집을 직접 찾아가 아이들 사는 모습을 보고 와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내내 울었다. 그러고는 그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에 마음을 모았다. 호적을 따로 만들고, 생활 보호 대상자로 지정받게 해서 매달 받는 생활 보조금 26만원을 그들 남매의 이름으로 통장에 저금해 주었다. 그렇게 산 지 6년째, 아이들은 중학생이 됐다. 그 아이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면서 나는 테레사 효과를 맛보았다. 비록 내가 그 사람만큼 남을 위해서 헌신하며 살지는 못해도, 흉내라도 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때가 가끔 있다. 이렇게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접했을 때나 큰 사고를 당했을 때, 매년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겪는 연말의 충격….
누구든 한 번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그동안 아쉬움이나 후회 없이 잘 살았는지,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돌이켜 보는 것은 중요하다.
어느 쪽에 속한 인생을 살았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각성은 미래를 희망의 꽃으로 활짝 피우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그림자같이 빨라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잠깐 살다 가는 인생, 적당히 살 만한 여유가 없다.
스위스의 한 노인이 컴퓨터로 자기의 80년 인생을 분석해 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80년 동안 잠자는 데 보낸 시간이 26년, 먹고 마시는 데 보낸 시간이 6년, 사람을 기다리며 약속을 지키는 데 보낸 시간이 5년, 그리고 직장에서 일한 시간이 21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소하게 쓰는 시간들을 다 빼고 나니까 실제로 ‘내 시간이다. 정말 가치 있고 보람차게 보냈다’고 할 만한 시간은 80년 중 2년도 안 되는, 아니 2일도 안 되는 46시간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인생이 짧은가?
『논어』에 의하면, 10대 중반부터는 ‘지학’(志學)이라고 해서 학문에 뜻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20대는 ‘약관’(弱冠)이라고 하는데 어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시기라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30대는 ‘이립’(而立)이라고 하며, 전문 영역에서 실력을 열심히 쌓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40대는 ‘불혹’(不惑)이라고 해서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된다고 한다. 50대는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해서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 모든 상황을 통합, 조정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60대는 ‘이순’(耳順)이라고 하는데, 모든 면에서 원숙한 자리에 이른다는 말이다. 이때는 자기를 이을 후배를 양성하고, 세우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나이에 따라서, 인생의 계절에 따라서 자기가 성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고, 목표가 있는 법이다. 시간 낭비는 죄다. 잘못된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 어리석은 나날을 보내지는 않았는지, 가치 있는 일을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지처럼 아무렇게나 구겨 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양복 저고리에 한복 바지를 받쳐 입거나, 양복 바지에 한복 저고리를 입으면 정상인 취급받기 힘들다. 내 인생이 이렇게 어정쩡하지는 않은지 자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한복이면 한복, 양복이면 양복으로 쫙 빼입어야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으로는 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작고 평범한 것에서부터 감사하며, 그로부터 기쁨을 누리는 가운데 남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면 짧은 인생을 길게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