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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아내는 여자와 다르다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 가끔 아내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 때가 있다. 방에는 아내가 혼자 잠들어 있다. 이젠 젊음을 찾아볼 수 없는 아내의 몸은 많이 쇠잔해 있다. 40년 전의 곱던 피부는 기억조차 희미하다. 어깨 뼈, 기운을 잃은 팔 다리는 작대기처럼 꼿꼿하기만 하다. 몸의 어느 한 부분도 젊은 시절만큼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지니지는 못한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주름은 더 많아지고, 허리는 굽을 것이며 피부는 더 거칠어질 것이다. 그러나 육체 때문에 아내가 옛날보다 더 미워진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지금은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아 예전보다 결혼 적령기가 많이 늦어졌고, 결혼을 하더라도 개인의 인생을 더 소중히 여겨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꺼려 수년 내에 우리나라가 노령화 사회로 접어든다는 보도를 접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결혼관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서구화되어 나날이 불거지는 가정 문제에 대해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는 가정과 부부 문제는 우리 자녀들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깔고 불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 당장은 탈선이나 이혼이라는 막다른 골목까지 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결혼 생활의 가장 위험한 시기가 언제, 어떤 사건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가정마다 다소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이미 여기저기서 곪고 있는 문제들을 숨길 수는 없다. 이제 더는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 아내가 결혼이라는 굴레에 묶인 채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용기가 없어 체념할 뿐이다. 아이들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것뿐이다. 남부끄러워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이를 악문다. 체념형이든, 책임형이든, 체면형이든 일단 그 부부의 사랑은 이미 식을 대로 식었고, 그때부터 할 수 없이 사는 뼈아픈 부부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부부들은 대개 한때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이제는 불씨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며 첫사랑을 그리워한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한숨 쉬고 후회하고 원망한다. 두 사람이 연애할 때만 해도,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한창 사랑이 무르익을 때만 해도 자기들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또 둘이 깊이 사랑하기만 하면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와도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고, 둘이 사랑하기만 하면 어떤 시험과 문제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으리란 환상적인 꿈을 꾸었다. 낭만적인 사랑은 남녀를 결혼으로 묶는 데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것이다. 누구나 다 이 낭만적인 사랑의 단꿈에 끌려 결혼을 하게 된다.

 

      헬라어에 사랑을 뜻하는 세 가지 말이 있다. 에로스와 필레오, 아가페가 그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을 하면 이성 간의 쾌락을 주는 에로스의 사랑과, 마음이 끌리는 필레오의 사랑이 결합되어 두 사람을 묶는 사랑의 끈을 만든다. 이러한 낭만적인 사랑이 없으면 결혼까지 골인하기 힘들다. 낭만적인 사랑은 이슬을 머금고 피어오르는 아침의 장미와 같이 아름답고 황홀하며 풍요롭다. 그 사랑은 인생의 갖가지 추한 것들과 고통스러운 것들을 보지 못하게 가려 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랑은 상대의 약점을 보지 못하게 하고, 설혹 그 약점이 눈에 띈다고 할지라도 그것마저 매력으로 느끼게 하는 희한한 마술을 부린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듯이 사랑에 취한 청춘남녀의 노래는 마냥 즐겁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런데 무엇이 인간에게서 이 아름다운 낭만의 사랑을 빼앗아 갔을까? 무엇이 이 사랑을 짓밟았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하던 사람들이 비극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까? 문제는 그저 에로스와 필레오의 사랑에만 매달려 부부 생활을 하려고 하는 데 있다.

 

      결혼 생활을 10년 정도 하게 되면 남편은 무엇이나 아내에게 요구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이기심과 정욕이 도사리고 있어 자기 필요나 만족, 자기 목적을 항상 우선에 두고 아내나 남편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자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기대에 너무 못 미치는 사람으로 보여 서로 실망하게 되고 나중에는 다투게 된다. 그때부터 부부 사이의 대화는 빈곤해진다. 서로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한 채 점점 상처를 키우게 된다.
사람만 죄로 인해서 악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도 죄로 인해서 너무나 악해졌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 첫사랑의 꽃을 오랫동안 보전할 수가 없다. 이 세상은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우기에는 토질이 너무 거칠다. 어쩌면 환상적인 사랑, 이상적인 사랑일수록 이 세상은 꽃을 피우기가 거의 불가능한 험준한 자갈밭, 험준한 산등성이일지 모른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마차가 매끄럽게 굴러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마차가 심하게 흔들리다 보면 사랑의 유리잔은 쉽게 금이 가고, 금이 간 유리잔은 결국 산산조각이 나 버린다. 결혼 전에는 어떠한 충격에도 버틸 만큼 강할 것 같던 이 낭만적인 사랑은 이상하게도 결혼을 하고 나면 고통이나 상처 앞에서 퍽 약해진다. 에로스와 필레오는 굉장히 대범한 것 같지만 한번 큰 충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져 버리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내와의 애정’과 ‘아내 아닌 다른 이성과의 애정’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복종해야 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지만, 똑같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위치와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남편이 서야 할 위치가 있고,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과 같이, 아내가 서야 할 위치와 역할 또한 있다. 서로 그 위치와 역할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존중하는 것이 바로 서로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무엇이든 이해하는 것이 서로 복종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해받는다고 느낀다. 적어도 배우자에게만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남편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아내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잠들어 있는 아내의 표정은 갓난아기처럼 평화롭다. 늙었지만 아기의 얼굴처럼 순진해 보인다. 신혼 때와 같은 얌전함이나 조심성은 없다. 아내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곤히 자고 있다. 결혼하기 전 아내는 별 볼일 없는 나를 무척 좋아해 주었다. 수줍은 듯 다가와서 말 한마디 겨우 건네면서도 얼굴 붉히며 뒤돌아서기 일쑤였다. 그런 아내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중성이 되어 갔다. 아내에게서 옛날과 같은 여성성을 찾기 힘들다. 지금 아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40년 동안 고락을 같이 해 온 나와의 역사다. 아내는 나 때문에 속을 썩은 일이 많았다. 그러나 과거는 나이 앞에서는 더욱 약해지는 모양이다. 어느 날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훌쩍 하늘나라로 간다면 남은 사람은 기분이 어떨까? 잠들어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베개를 당겨 자리에 누웠다. 잠이 좀처럼 올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