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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5월

하나의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나무랄 데 하나 없는 한 처녀가 혼기를 훌쩍 넘겼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자, 그 이유가 궁금해서 왜 결혼을 늦추느냐고 물어봤다.
“아니,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중매도 많이 들어오고 선도 많이 보았는데 왜 결혼을 안 하세요?” 그랬더니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결혼도 중요하지만, 저와 인생관이 맞지 않는 남자에게 어떻게 마음을 주고 평생을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인생관이 같은 남자를 만날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죠.”
결혼을 앞둔 세계 젊은이들을 상대로 결혼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 미국과 유럽 젊은이들 중 거의 60% 가까운 사람들이 “인생관이 같아야 한다”고 대답한 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대부분 경제적 안정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 결과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통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인생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사랑할 상대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상대를 반드시 가리고, 까다롭게 따진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고 “사랑합니다” 하고 말할 수 없고, 아무하고나 결혼식을 올릴 수도 없으며, 결혼하려고 선택한 단 한 명에게 주어야 할 사랑도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뿐인데 어떻게 여기저기 갈라 줄 수 있겠는가? 그 하나뿐인 마음을 누군가에게 주려면 선택을 바로 해야 하며, 선택을 바로 하면 하나뿐인 소중한 마음을 상대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며, 내 인격 전부를 송두리째 바쳐야 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꽤 까다롭다. 우리의 타고난 성품으로는 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없다.

 

만약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해도 남은 인생을 함께할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면, 새로운 갈망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새 사람을 사랑하는 새 마음이 나에게 생겼다고 해서 옛 사랑의 기억이 한순간에 녹아 없어지는 눈처럼 다 없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부분 옛 사랑은 마음 한구석에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려는 새 마음과, 옛 사랑을 여전히 사랑하고 싶어 하는 옛 마음이 자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종종 새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짓밟아 버리고 옛 사람을 향하게 만드는 유혹 때문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새 사람을 만나면서도 옛 사람을 잊지 못해 심각한 탈선을 범하기도 한다. 아니면 새 사람도 사랑하고 옛 사람도 사랑한다는 이상한 논조를 펴면서 마음속에 두 사람을 다 담아 놓고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 사람과 남은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단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오직 새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의 사랑이 내 영혼을 채우면 다른 사랑은 떠나게 마련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만약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면 다른 한 사람은 당연히 경시할 수밖에 없다. 

 

누구든지 상대로부터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엉뚱한 데 준다면 그 사람은 근본이 잘못된 사람이다. ‘선과 악’처럼 상반된 존재를 모두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선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마음에 악이 차지할 자리는 없으며, 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으면 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을 수가 없다. 자석이 서로 다른 극을 밀어내듯이 내가 선을 사랑하면 악이 떠나가고, 악을 사랑하면 선이 떠난다.
여기서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악한 세력은 인간 사회를 지칭하는 말이다. 비뚤어진 원리에 의해 비열한 욕망, 그릇된 가치관, 이기주의 등으로 혼탁해진 인간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눈은 마음으로 통하는 문인데 이 눈을 통해서 마음의 정욕이 자극을 받아 일어나는 욕심을 ‘안목의 정욕’이라고 한다. 이것은 외관에 끌려 일어나는 욕망이다. 물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따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빈번히 ‘탐욕’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나타난다.
인간 사회, 즉 세상을 사랑하는 동기가 이 정욕 뒤에 숨어 있으면 더 이상 절제도 없고, 선택도 없다. 세상을 살면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고 재물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중요한 진리를 놓치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손해는 없다. 이생에서의 자랑은 아무리 좋아 보이고 우리를 행복에 젖게 만들어도 일시적인 환상에 불과하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명예를 얻었어도 그것들 때문에 나의 마음이 세상으로 치우쳐 있다면, 확신하건대 그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를 안겨 주지 못한다.

하나를 취하면 다른 하나는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에는 하나밖에 담을 수가 없는데, 안 되는 일을 하려고 버둥거릴 필요가 없다. 결혼을 앞에 둔 사람이 두 사람을 두고 끝내 결정하지 못한다면 결혼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둘 다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망하게 되어 있다. 이런 끔찍한 손해를 볼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둘 다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의 육신은 약해서, 마음으로는 선하게 살고 싶으나 실제로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며 세상에 온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을 살든지 그것은 다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아침 안개와 같으므로 거기에 마음을 두면 안 된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존재를 전적으로 사랑하는 길만이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