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08년 12월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1년 중 2월이 좋다는 말을 듣고 일몰을 찍기 위해 태안반도에 있는 꽃지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막상 가서 보니 보름 정도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돌섬과 지는 해가 거리상 좀 멀다는 감이 들었고, 게다가 돌섬 비탈에 앙증맞게 뿌리 내리고 있는 저 작은 소나무들이 지는 해와 노을 못지않게 너무나 소중한 소재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만일 저 나무들이 없다면? 아무리 일몰이 장엄해도 지금의 운치를 살리지는 못할 것이다. 한편 수면 위로 삐죽 내밀고 있는 깃발은 정말 나의 비위를 건드렸다. 당장 옷을 벗고 들어가 뽑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가 한겨울에 정신 나간 짓을 할 정도로 사진에 미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늘이 내가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헛걸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름다운 노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하던 대로는 아니었지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무거운 삼각대를 맨 젊은이들이 십여 명 몰려와서 내 곁에서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흥미로웠다. “오늘은 좀 괜찮네. 제기랄, 사흘이나 기다리게 할 게 뭐야?” 그들은 지금 보는 일몰을 기다리느라 여기서 이틀을 무료하게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당일치기로 땡잡은 셈이었다. 속으로 소곤거렸다. “주님,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누군가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늙어 가는 자신의 초라함을 미화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닌가 한다. 사실 옳은 말이다. 지는 해가 더 아름다울 때가 많다. 인생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