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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내가 스위스 인터라켄Interlaken을 찾아갔을 때는 야생화가 온 천지를 덮고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아침 이슬을 머금고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 참 평화로워 보였다. 한편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곳 주민들의 야생화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가 길가 작은 공터에 가득 피어 있는 야생화를 헤집고 들어가서 삼각대를 세우려고 하면 지나가던 주민이 안 된다고 말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불어나 독어를 잘 몰라 뭐라고 말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진 찍느라 야생화가 다치면 안 된다는 표시였음에는 분명했다.
내가 묵었던 숙소 뒤편에는 꽤 큰 밭이 있었는데 온통 야생화로 덮여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전경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야생화로 앞치마를 두른 듯한 아름다운 교회 종탑이 바로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다음 날 사람이 뜸한 시간을 이용하여 밭 속으로 숨어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야생화가 허리까지 자란 곳이라 몸을 낮추면 지나가는 주민이 있어도 들킬 염려가 없을 것 같았다.
렌즈를 통해 잡힌 전경은 운치가 있었다. 노란색을 가진 꽃들을 전경에 넣고 아름다운 교회 종탑을 뒤에 넣으니 그럴듯해 보였다. 얼마 후 사진을 찍고 나오다 뒤를 돌아보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는 야생화가 폭격을 맞은 듯 형편없이 망가져 있는 것이 아닌가? 풍경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본의 아니게 자연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자연 깊숙이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그것을 멋지게 표현하려는 욕심에 발 들여놓아서는 안 되는 곳을 침범할 때가 자주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작품은 살리고 자연은 죽이는 어이없는 일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쁜 사람들이다.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