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09년 11월

변화산 채플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뉴욕과 워싱턴에서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혼자서 출국했다. 마침 9월 하순경이라 가는 길에 잠깐 시간을 내어 와이오밍주Wyoming에 있는 티탄 국립공원Grand Tetan N.P.에 들르기로 했다. 아스펜aspen 단풍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 괜찮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때쯤이면 하얀 외투로 늘씬한 몸을 감싸고 황금빛 코트를 흔들며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있는 아스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막상 가 보니 타이밍은 그런대로 맞춘 것 같았다. 한가지 아쉬웠다면 온난화현상 탓인지 바로 뒤에 보이는 티탄 산 정상에 있어야 할 스노우 캡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단풍은 아름다웠다.
미국의 국립공원 가운데 채플을 마련해 놓고 주일마다 관광객이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배려한 곳은 흔치 않다. 티탄 공원은 이런 면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다. 십자가가 우뚝 서 있는 채플은 언제든 열려 있었다. 그리고 주일예배 안내가 걸려 있었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 서울의 대형 교회에서 침묵과 고독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나는 의자에 앉아 잠깐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눈을 떠 앞을 바라보는 순간 그 전경은 마치 낙원으로 이끌려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소박한 설교단과 나무 의자가 놓여 있는 강대상 뒤로 큰 창문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시야에 가득히 들어오는 전경이 무척 황홀했기 때문이다. 티탄의 산맥들이 웅장하게 뻗어 있었고, 한창 노란 빛깔이 절정에 이른 아스펜 군락이 그 옷자락을 받쳐 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더 좋았던 것은 그 대자연 속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직 나와 주님뿐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귀에는 천사들의 합창 소리뿐이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아쉽지만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사진 찍을 수 있는 부드러운 햇살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십자가와 통나무 예배당, 화려한 단풍과 원시적인 야경, 그리고 장엄한 산들과 파란 가을 하늘, 이 정도면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아쉬움을 접지 못했다.
산 정상에 하얀 눈이 조금이라도 덮여 있다면, 광각렌즈의 한계를 극복하고 산세의 웅장함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면, 게다가 하늘이 너무 단조롭지 않은가? 손바닥만한 구름이 몇 점만 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미련 때문에 그 후 몇 번을 더 들러 보았지만 내 욕구는 충족되지 못했다. 시간에 쫓기는 목사 처지에 며칠이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감사한다. 내가 렌즈를 통해 보았던 것보다 필름이 훨씬 박진감 있는 묘사를 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