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 C. S. 루이스(1898~1963)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20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이자 변증가라 불리는 C. S. 루이스. 그는 서른한 살 무렵까지도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함께 작품을 두고 나누던 기독교인 친구 J. R. 톨킨이나 바필드와도 언제나 기독교의 반대 입장에서 논쟁을 벌이던 그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지 맥도널드, 단테, 새뮤얼 존슨, 체스터턴처럼 그가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은 언제나 기독교인이었다. 그와 마음을 나누고 그가 존경하는 친구들까지도 말이다.
사고하면 할수록 그는 신이라는 존재를 벗어날 수 없을 것같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2층에 타고 있던 그는 깨닫게 된다. 자신이 갑옷을 입고 무언가에 대해 문을 닫고 있음을 말이다. 어떤 감정적인 동요도 없었지만, 정말 중요하게 느껴지는 그 기로에서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열기로 결정한다. 그러자 철학이나 논리를 넘어선,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동물원에 가던 길에 아주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받아들이게 된다. 커다란 감정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의 의미를 찾던 C. S. 루이스였지만 이제 그 기쁨조차 그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자신이 갈망하던 대상,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기 때문이다.
중세문학가로, 비평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그날 이후 기독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의 대변자로 서게 된다. 그리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뿐 아니라, 『나니아 연대기』와 『침묵의 행성 속으로』와 같은 소설까지 수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그는 상상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이 그 나름의 방식대로 하늘의 진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을,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전쟁 중 라디오방송을 통해서도 기독교의 기본, 순전한 복음과 믿음을 설파했던 그는 “루이스 교수는 자신이 어디를 거닐든 그곳에 있는 사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뉴욕타임즈의 평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고와 삶이 어떤 것인지를 지금까지도 보여 주고 있다.
<안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