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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의 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이토록 착하고 아름다운 영화가 있을까? 일본의 작은 마을 고조 시를 배경으로 한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제목처럼 맑은 여름 하늘 밑에서 만나는 찬란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1부는 영화감독 태훈(임형국)이 만나는 고조 시의 고즈넉한 모습과 흘러간 이야기로, 2부는 감 농장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와 여행자 혜정(김새벽)의 설레는 감정으로 채워진다. 이 두 챕터는 독립적인 부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장소나 인물, 소재 등이 미묘하게 겹치며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과 맞물린다.
극 중 배경이 되는 고조 시는 일본 나라 현 남서부에 위치한 소도시다. “사람이 없어서 영화 찍기 수월했다”는 장건재 감독의 인터뷰만 보더라도 조용하고 한적한 곳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적막함은 모두가 도시로 떠난 후 텅 비어버린 고조 시의 쓸쓸한 이면일지도 모른다. 장 감독은 “흘러간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외치는 극 중 태훈의 입을 빌어, 사라져 가는 한 마을의 찬란한 기억들을 소환한다. 결국 기억이 주는 그리움의 정서는 오래된 흑백 사진을 꺼내 보는 것처럼 기억 너머로 사라져가는 고조 시의 모습을 건조한 흑백으로 재현한다.
그에 비해 2부는 두 남녀의 로맨스라는 설레는 정서가 다채로운 컬러의 감성으로 쌓여가며 또 하나의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낸다. 1부가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면, 2부는 그 기억을 재현하는 일종의 ‘무대’인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고조 시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조우하게 하며 현재의 나 또한 바라보게 한다.
결국 감독은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를 공유하는 1부와 2부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며 고조 시에 공존하는 인생의 양면적인 것들의 의미를 곱씹는다. 젊음과 늙음, 떠난 자와 머물러 있는 자, 삶과 죽음이 그것이다. 이는 각 파트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불꽃놀이로 의미화된다.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고 또 거대하지만,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홀연히 소멸하는 불꽃. 이는 고조 시의 과거와 현재를 의미함과 동시에, 소멸과 생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숙연하게 바라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