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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남아 있다 -<스틸 앨리스>(2014)

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앨리스(줄리안 무어)는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이자 주목받는 언어학자다. 그러던 어느 날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게 되고,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흐려지는 자신만은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스틸 앨리스>는 삶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가는 ‘나’를 지켜내고자 하는 주인공 앨리스의 삶의 기록이다. 알츠하이머를 기억과 정체성의 테마로 접근하며, 그녀의 모습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시도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거기에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안 무어의 명연기가 더해지며 앨리스의 모습은 시종일관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한다. 
  <스틸 앨리스>는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을 읽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은 ‘인간의 정체성이란 경험과 감정, 지성이 모인 결과물일 텐데, 이 모든 것을 잃기 시작한다면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라는 강렬한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설정으로 앨리스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과 더불어 컬럼비아대학교 언어학 교수라는 점에 주목한다. 언어학 교수인 그녀에게서 언어를 빼앗고, 언어학을 위해 노력한 수많은 시간과 더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했던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앨리스가 여태껏 달려온 삶의 목적과 가치, 그리고 흔적을 그녀에게서 제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녀는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기억을 지켜내야만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 내내 앨리스는 이 모든 과정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매 순간 침착한 결단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설정된 원작과 달리, 언어학 교수로 각색한 부분은 감독의 세심한 고민의 흔적일 것이다. 결국 기억은 사라져도 지금의 내가 여전히 존재하는 ‘스틸(still)’ 앨리스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앨리스의 흐려지는 삶에 큰 위로가 됐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 영화는 슬픔을 직시하고 자신을 지켜내려는 앨리스와 그녀의 가족들의 모습을 강하게 드러냄으로써 현실감 있는 울림과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