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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모두가 여전히 어른이 돼 가는 중 <태풍이 지나가고>(2016)

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과거 소설가로서의 영광은 뒤로한 채 흥신소 사립탐정으로 살아가는 료타(아베 히로시). 어느 날 어머니(키키 키린)의 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발견하게 되고, 갑작스런 태풍으로 인해 헤어진 아내 그리고 아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다. 어린 시절 태풍이 지나간 후 왠지 맑아진 것 같은 거리의 모습을 떠올린 감독은 작은 일상의 순간을, 삶을 통찰하는 묵묵한 메시지로 환원한다. 이는 현실을 껴안고, 꿈을 이루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깊은 내면의 이야기일 것이다. 
매 작품 상실된 가족 구성원과 남아 있는 구성원 간의 연결고리를 고민해 온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과 그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아들’이라는 설정으로 또 한 번 이들의 관계와 변화, 그리고 성장의 모습에 주목한다. 주인공의 이름도 여전히 ‘료타’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이어 또다시 등장하는 이 이름은 아직 철들지 않은 어른의 상징이 된 듯하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가족의 모습 속에서 깨달음의 지점을 발견하는 료타의 성장담이다.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세상, 자신이 원하는 어른 되기조차 쉽지 않은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미안한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료타는 문득 자신과 닮은 아들의 모습 속에서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나 싫어했던 아버지였지만 본인이 아들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사랑의 감정 또한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순간은 커다란 사건사고가 아닌 작고 작은 일상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소소한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다. 그렇게 태풍 부는 밤은 보이지 않지만 큰 변화와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감독은 “우리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모두가 여전히 어른이 돼 가는 중이다”의 뜻도 가능하지 않나 싶다. 영화는 종종 천천히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을 이미지화한다. 식혀서 하룻밤 묵혀 놔야 제맛인 곤약조림, 딱 좋게 간이 배어 더 맛있는 카레 같은 정겨운 이미지들이다. 그렇게 우리도 조금씩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