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건달 익준(양익준), 탈북자 출신 노동자 정범(박정범), 어리바리한 집주인 종빈(윤종빈), 이들 모두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동네 어귀 작은 술집 ‘고향주막’을 운영하는 예리(한예리)다. 고향주막은 주변인으로 취급받는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다.
<춘몽>은 장률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이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듯, 따뜻한 봄날 잠시 지나가는 한숨과도 같은 한조각의 꿈 이야기다.
“봄날의 꿈을 담고 싶었다”라는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 역시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파편화돼 있는 이야기들, 인과를 알 수 없는 전개 같은 꿈의 형질을 고스란히 입고 있다. 또한 컬러인지 흑백인지 구별조차 안 되는 꿈의 기억을 시종일관 느슨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그러나 <춘몽>은 작게나마 현실을 비추는 거울도 된다. 그래서 주목할 지점이 바로 ‘거울 이미지’다. 그 거울은 극 중 여기저기 등장하며 등장인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시작부터 영화는 거울 속에 비친 정범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를 부당하게 취급하는 사장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다. 이는 그가 마주한 현실을 각성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후로도 틈틈이 인물들은 거울 속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일명 ‘루저’로 불리며 비웃음과 편견에 둘러싸인 모습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최대한 그런 시선을 거두고 이들에게 나른하고 평범한 나날들을 제공한다. 또한 아픈 아버지에 대한 마음, 여인에 대한 사랑, 갈 수 없는 고향, 알 수 없는 미래 등 그들의 소박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 또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일까. 예리는 부족한 세 남자에게 담뿍 애정을 주고, 세 남자 역시 예리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껴 주며 행복한 ‘꿈’을 꾼다.
영화의 테마가 되는 곡이 있다. 그룹 산울림 6집 앨범에 수록된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라는 곡이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라는 가사처럼, <춘몽>은 비록 연기처럼 사라진 꿈이지만 그 꿈을 기억하며 다시금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는 봄날의 단잠 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