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오정현 목사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아내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갖 정성을 쏟는다. 아이들이 공부하러 다시 출국한 후, 아내에게 “아이들에 대한 헌신과 희생이 대단한데, 그 정성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내의 대답은 하나였다. “사랑하니까.” 그때 그 말이 가슴속에 와 닿으며, 나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개척 교회 시절,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을 밤낮으로 뒷바라지하며 내조하셨던 어머니에게도 그 시절을 견디게 한 것은 ‘사랑의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심순덕 씨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글에 뒤늦은 자식의 후회가 나타난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던 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과거 우리네 어머니들의 자화상이다. 퍼주고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힘 때문에 그렇게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니까 모든 수고와 희생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자녀들에 대한 어머니의 지치지 않는 사랑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고난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고난이 한 번만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연속적으로 오기도 하고, 한꺼번에 겹쳐 오기도 한다. 고난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인해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성장시킨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크기만큼 내가 성장한다. 가정 안에 상처와 눈물로 얼룩진 일이 있다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자. 오르막은 다 올라가서 보면 걸을 만한 평지일 뿐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지만, 성장의 기쁨도 함께 준다. 수없이 상처 입고 방황하며 실패한 우리를 하나님은 언제나 응원해 주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 진심으로 사랑하면 힘들지 않다. 사랑하면 우리 삶에 새 날이 열릴 것이다.